샌드위치 20대, 이유는 있다

입력 2008-05-31 07:56:12

촛불집회 정국이 계속되는 요즘, 엉뚱하게도 20대들이 비난받고 있다. 20대의 정치적 보수화 현상 및 사회참여의식 부재와 관련한 논란이다. 지금까지 20대는 사회 변혁의 주도 세력이었다. 4·19혁명의 선두에 섰고 1987년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청년이 조국의 미래'라는데 요즘 20대는 정말 보수화됐으며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집단일까. 그 오해와 진실을 취재해봤다.

◆'찌질이' 20대?

"하여튼 아무 생각이 없어요. 자기밖에 몰라서 단체생활이니 윗사람에 대한 권위 인정은 눈곱만큼도 없죠. 그저 영어 잘하고 학점 잘 받아서 취업할 생각뿐이지. 불만은 많으면서 정작 투표해서 세상을 바꿔 볼 생각도 없어요. 도대체 요즘 20대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취재 중 만난 다른 세대들은 20대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기야 역사 이래로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로부터 각광받고 축복받은 시절이 있기나 했던가.

커피숍을 운영하는 장영호(45)씨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쓰기가 무섭다고 푸념했다. 경험을 쌓게 해주자는 생각에 주방보조 일도 함께 시켰지만 한달을 못 채우고 일을 그만두기가 다반사라고 했다. "일을 배우다 보면 선배에게 칭찬과 꾸중을 들을 수도 있는데 조금만 나무라도 참지 못하고 다음날 출근하지 않습니다. 휴대전화를 걸어서 '미안하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자'라면서 간곡히 부탁하면 며칠 더 일하는데, 결국 그만두고 맙니다. 20대를 싸잡아서 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젊은이들 안 돼요."

중견업체 차장인 권모(38)씨는 20대를 일컬어 이렇게 말했다. "업무 지시를 하면 일단 '예'하고 듣는 법이 없어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고 합니다. 회식 한번 하려면 무릎 꿇고 부탁할 정도입니다. 저마다 약속이 있고 다른 볼일이 있다는데 억지로 끌고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고교생 박정호(18)군은 "대학생이면 사회를 이끌고 갈 예비 세대이고 그만한 책임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광우병 파동과 관련한 촛불시위를 봐도 그렇고 요즘 대학생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한다. 박군은 "얼마 전 대학생인 형과 광우병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보나마나 급식에 나올 텐데 걱정'이라고 했더니, '요즘 고등학생들 한가한가 보네? 형은 취업 공부한다고 뉴스 볼 시간도 없는데'라면서 타박을 주었다"며 "촛불 들고 나선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말해서 너무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 그리고 20대 투표율

지난해 말 대선과 지난 4월 총선, 그리고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비롯된 촛불시위까지 20대들은 참 많이 욕을 먹었다. 이들이 과연 욕먹을 일을 했는지, 아니면 아예 아무 선택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욕을 먹었는지는 잠시 뒤로 미루자.

'20대 보수화'를 비난하는 이들은 20대들의 정당 및 후보 지지율, 투표율을 힐난의 근거로 삼는다. 18대 총선의 20대 투표율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도마에 올랐다. '20대 투표율 19.3%'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통틀어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던 지난 총선 전체 투표율 46.1%에 대한 의미 분석을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였다. 한 일간지는 이를 두고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해프닝이었다. 19.3%는 전체 유권자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었다. 와전된 것이다. 연령대별 투표율을 비롯한 선거결과 분석은 3개월이 지나야 나온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17대 대선 분석도 3월에야 나왔다. 전체 투표율 63.0%를 보인 지난 대선에서 20대 전반(20~24세) 투표율은 51.1%, 20대 후반(25~29세)은 42.9%로 나타났다. 20대 후반의 투표율은 전체 연령대 중 최저로 나왔지만 20대 전반의 투표율은 30대 전반 투표율(51.3%)과 별 차이가 없었다. 지난 총선에서 전체 투표율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20대 투표율도 많이 내려갔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19.3%는 아닐 것으로 짐작된다. 낮은 투표율이 20대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로 지난 대선에서 19세 및 20대 투표율이 가장 높은 곳은 다름 아닌 대구였다. 19세 투표율은 61.6%, 20대 투표율은 52.4%를 기록했다.

투표율과 함께 '20대의 정치적 보수화'도 비난 메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50%를 넘었다며 일부에선 호들갑을 떨고 일부에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는 비난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과연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지, 보다 근본적으로 따져보자면 왜 보수 또는 진보를 택해야하는지에 대한 진중한 토론과 그에 걸맞은 교육도 하지 않고, "20대이니까 어느 쪽이든 성향을 택해야 한다"거나 "기성세대 또는 기존 사회에 대한 반항심을 토로해야 할 20대가 이처럼 '우향우'를 하다니…" 하는 식의 비판은 기성세대의 무책임을 회피하려는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광우병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20대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소문일 뿐이다. 중고생의 경우 교복차림이다 보니 눈에 잘 띄고, 이 때문에 촛불집회르 10대들이 주도한다는 말이 생겼다.

◆지금 당신이 20대라면 과연 다를까?

지금 20대는 '88만원 세대'라고 불린다. 88만원 세대를 풍자한 UCC(사용자제작콘텐츠)를 한편 보자. 서울에서 홀로서기에 나선 미혼 20대의 가계 지출을 가정한 이야기다. 휴대폰 요금, 전기 및 수도요금,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료, 인터넷 요금 등 공과금이 25만원, 아침은 굶는다고 치고 한달 밥값은 한끼당 5천원을 가정했을 때 30만원, 출퇴근에만 쓰는 교통비가 6만원, 용돈 7만원이 든다. 저축은 한푼도 없다. 여기까지만 68만원. 중요한 게 하나 빠졌다. 바로 집세. 원룸이나 고시원에 살아도 한달 30만원은 줘야 한다. 매달 10만원이 적자다.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지.

'88만원 세대'는 우울한 전망일 수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본 전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청년실업 100만 시대에 '꿈과 이상은 없고 그저 토익책만 들여다본다'고 욕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말이다. 적자 인생을 살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20대들은 그들 세대에 대한 비판에 사실상 무신경하다. 취재 중 만난 대학생 12명 중 '88만원 세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한 대학원생은 "처한 상황이 천차만별인데 한 단어로 묶어낸다는 것이 오히려 우습다"고 했다. 그의 말을 잠시 들어보자. "대기업 가고 싶으면 일찌감치 준비하고,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도 있고, 학원 강사로 나가는 선배도 있어요. 과외로 버는 대학원생 월 평균 수입이 150만~200만원은 됩니다. 수학 전공이라서 일자리가 많습니다. 계속 공부할 생각도 있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학원을 차리거나 강사로 나서면 되죠." 국문학과 4학년 남학생은 "우리도 먹고살기 힘들어요. 꿈이고 이상이고 웃긴 얘기죠. 당장 취업이 코앞인데. 국문과 학생이 토익 공부하느라 하루 서너시간 보낸다면 말 다했잖아요?"라고 했다. 통계학과 3학년 여학생은 "사실 신문이고 방송이고 안 보기 때문에 20대를 욕하는 줄도 몰랐어요. 제 친구 대부분 그럴 걸요. 당장 시험치고 학점 관리하고, 영어공부하랴 아르바이트 뛰랴 정신없는데 욕한다고 대꾸할 겨를이 어디 있나요? 지금 대학생들이 한심스럽나요?" 혼자서 무심코 던진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한참을 기다리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기자님이 지금 대학생이면 다르게 살 것 같아요?"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88만원 세대=지난해 출간된 '88만원세대'(우석훈·박권일 씀)에서 나온 말. 책은 88만원 세대를 이렇게 정의했다. "지금 20대는 상위 5%만이 한전과 삼성전자, 5급 사무관 등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다. 나머지는 이미 800만명을 넘어선 비정규직 삶을 살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 1990년대 중반까지 경북대 북문 광장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최루탄 연기가 마치 안개처럼 자욱하게 드리워 있었다. 민주화를 위해, 때로는 학생들의 권익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던 20대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겉모습도 새롭게 바뀐 2008년 5월의 경북대 북문은 세상의 소음을 차단한 채 한가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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