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싶은 길]대구 중구 봉산문화거리

입력 2008-05-29 14:35:41

"길이 끝나는 곳에 문화의 향기가 묻어있다"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라 한다. 삭막한 도심 한가운데 문화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봉산문화거리는 서울의 인사동과 비교되는 대구 대표 명물거리로,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반월당 네거리에서 대구학원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나무 장승 두 개가 서 있다. 장승의 이름은 '문화대장군'과 '예술여장군'. 안동 하회마을에서 제작한 것으로, 콘크리트 아스팔트 건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봉산문화거리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해 봉산육거리까지 600m쯤 이어진다. 거리 초입에서 만나는 유료공영주차장 외벽에는 화랑 안 풍경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고, 각종 전시 플래카드가 끝없이 이어진다. 서양'동양화, 서예'문인화, 사진, 도자기 등 거리의 화랑과 문화회관에서 펼쳐지는 공연들이다.

봉산문화거리에는 화랑'고서적'골동품'표구점'필방 등 문화공간이 즐비하다. 15년 전부터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고, 도심에 위치한 편리한 교통과 집객 효과가 맞물려 어느새 50곳으로 늘어났다.

봉산화문화거리를 걷는 재미는 이같은 문화공간을 들여다 보는 데 있다.

투명 유리에 비치는 고서적'골동품'고미술품에 자연스레 눈길이 가고, 전시회 푯말이 붙은 화랑에 들어가 예술작품들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예송갤러리는 서양화와 도예를 전문적으로 전시하고, 금요고서방에선 매월 둘째 토요일마다 고서경매가 열린다. 고미술전문 유대사전시장과 서양'동양화와 조각전을 여는 중앙갤러리 등 한번쯤 둘러 볼만한 곳이 많다. 나무로 지은 화랑 몇군데는 건물만으로도 보는 기쁨이 있고, 고풍스럽거나 기하학적 벽무늬를 자랑하는 문화공간들도 여럿 있다.

이런 문화공간 한가운데에 위치한 봉산문화회관은 뮤지컬을 비롯한 각종 공연과 전시회, 문화교실이 풍성히 열리는 곳이다. 거리를 둘러보면서 공연과 전시를 함께 구경하는 것도 좋다. 봉산문화회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중구청소년 문화의 집이 보인다. 풍선아트, 미술동아리 모임, 놀토 미술학교 등 풍성한 5월 프로그램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문화의 향기를 만끽하다 봉산문화거리의 끝에 다다르면 조그만 비석이 나온다. 1912~50년을 살며 대구에서 활동한 천재 화가 이인성을 기리는 비석이다. 이인성은 1940년대 전후 이곳 작업실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걸을 공간'상징 조형물 없어 아쉬워

봉산문화거리는 화랑'고서적'골동품'표구점'필방이 모여 있는 대구 대표 명물거리지만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마음껏 걸을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 인도가 있긴 하지만 폭이 너무 좁고 오토바이 같은 적치물들이 많아 걷기에 불편하다. 주차한 차량들로 가득한 도로로 내려와 오가는 차들을 피해 걷다 보면 짜증까지 날 지경이다.

봉산문화거리를 대표할 만한 상징 조형물 하나 없다는 것도 아쉽다. 입구에 세운 장승 두 개가 특이하긴 하지만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봉산문화거리 표지판도 너무 단조롭고 이인성 비석도 눈여겨 보지 않으면 찾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문화 공간들의 모임 '봉산문화협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상 주차장을 없애는 대신 인도를 확장해 걷기 편한 거리로 만들고, 넓어진 인도에 거리를 대표할만한 조형물을 세우고, 대구 화단을 빛낸 작가들의 미니 미술관을 만들자는 등의 의견을 냈다. 인사동과 비견되는 대구 봉산문화거리가 청계천 같은 리모델링 작업을 통해 국내는 물론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한국 명물거리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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