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대구, 문학관 제로지대

입력 2008-05-29 11:14:14

시군마다 향토문인 추모관 건립/대구도 상화'빙허기념관 하나쯤

얼마 전 全州(전주)엘 갔었다. 말하자면 '최명희 문학 테마여행'이었다. 올해 고희가 된 고모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어해서였다. 고모는 평범한 할머니지만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특히 대하 소설을 즐겨 읽는다.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김주영의 '객주', 최명희의 '혼불' 등 한국 문학사에 방점을 찍은 대하 소설은 거의 다 읽었다.

최명희 문학 여행은 두 번째였다. 2년 전 첫 여행은 남원의 '혼불 문학관'이 목적지였다.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2004년 개관한 문학관 안에는 작가의 육성이 나직이 흐르는 가운데 생전의 집필실과 소설의 주요 장면들을 재현한 디오라마, 육필원고 등이 전시돼 있었다. 17년간 '혼불' 한 작품에 심혈을 쏟은 끝에 결국 쓰러졌던 그녀의 삶이 애잔함으로 다가왔다. 작가의 유년기 추억이 어려있는 마을에서 작품 속의 종택과 저수지, 노적봉 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즐거움이 됐다.

전주 시내 한옥마을의 '최명희 문학관'은 이미 명소가 된 듯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단풍나무가 숲을 이룬 최명희 문학공원 내 유택과 생가터의 표지석도 길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흔적은 곳곳에서 文香(문향)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지역민들이 작가 최명희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부러웠다. 그리고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문화예술도시라면서도 문학관 하나 없는 대구가 생각나서였다.

전국의 문학관은 30여 개 된다. 우리 문학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작고 작가들이 대부분이지만 생존 작가들의 문학관도 더러 있다.

지역적 분포로는 전북이 돋보인다. 인구 190만 명이 채 안 되는 지역에 '미당 시문학관'(고창), '채만식 문학관'(군산), '최명희 문학관', '혼불 문학관' 등 4곳에다 오는 6월엔 시인 신석정을 기리는 '석정 문학관'이 부안에서 착공된다. 인구 비례로는 전국 최다이다. 반면 550만 명 인구가 있는 대구'경북권엔 '지훈 문학관'(영양), '이육사 문학관'(영양), '구상 문학관'(왜관), '동리'목월 문학관'(경주) 등 4곳뿐이다. 대구는 눈 씻고 봐도 없다.

한때 대구는 한국 문학의 산실이었다. 민족 시인 이상화, 천재적 시어 감각의 이장희, 근대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한 소설가 현진건 등은 대구가 낳은 보배들이다. 1950년대엔 많은 피란 문인들로 문학의 꽃을 피웠다. 문학 여정의 빛나던 한때를 대구에서 보낸 문인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그들의 문학적 발자취는 희미할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복원된 상화 고택이 그나마 유일하다 할까. 하지만 말 그대로 옛집을 되살려낸 데 그친다. 그 자체로도 의미야 있지만 작가의 문학적'인간적 향취까지 더듬어 보기는 어렵다. 이상화나 이장희'현진건이 우리 문학사에 미친 영향력을 볼 때 이들을 기리는 문학관이 여태껏 없다는 사실이 진정 안타깝다. 문학관은 작가의 문학혼'시대정신이 담긴 현장이자 문학과 일상을 잇는 소통구이며, 그 지역의 문화예술적 품격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관광객 유치 등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최근 경남의 움직임이 한층 부럽게 여겨진다. 지역 출신 유명 작가들의 문학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동군은 소설가 이병주를 기리는 '이병주 문학관'을 지난 4월 개관했고, 통영시는 2010년 개관 목표로 추진 중인 '박경리 문학관'과 함께 김춘수, 김상옥, 김용익 문학관도 건립, 이 일대를 문학타운화할 계획이라 한다.

대구엔 오페라하우스도 있고 시립미술관도 건립 중이다. 뮤지컬 전용 극장과 공연아트센터, 전국 최초라는 시립음악박물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구가 배출한 걸출한 문인들을 기리는 문학관 건립에도 관심을 둬야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고모는 문학여행에 꽤 재미들인 것 같다. 관절염으로 끙끙거리면서도 다음 순서로 '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벌교며 통영 미륵산의 박경리 선생 묘소를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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