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쌀종자 찾아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지난 2월 영남대 생물자원학부에서 정년퇴임한 서학수(66·사진) 교수가 평생을 연구한 결과물을 얼마 전 한권의 책으로 내놨다. 지난 24일 'Weedy Rice(잡초벼)' 출판기념회를 연 서 교수는 "30여년 동안 쌀 종자를 찾기 위해 전세계를 누비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후학들의 학문 연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그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 교수가 쌀 연구를 시작한 것은 영남대에 부임한 1977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통일벼 육성이 끝나 일반 가정에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국내 쌀 자급자족률은 무척 낮았다. 이후 30여년이 흐른 지금 쌀의 자급자족률은 97%까지 치솟았다.
"쌀 자급자족률은 높아졌지만 쌀 소비량은 오히려 줄었지요. 당시 1년에 1인당 쌀 소비량이 120kg쯤 됐는데 지금은 70kg밖에 안돼요. 그때는 세끼 모두 쌀을 먹었다면 지금은 한끼 반 정도로 준 셈입니다." 쌀 생산은 늘었지만 쌀에 대한 선호는 줄어드는 모습을 연구현장에서 줄곧 지켜봤던 그의 심정은 어떨까?
"우리에게 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식입니다. 최근 음식문화가 서구화되면서 쌀 의존도가 조금 줄기는 했지만 수천만년 동안 우리와 함께했던 쌀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서 교수는 앵미(잡초벼)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고 했다. '앵미'는 '악미(惡米)'라는 다른 이름에서 보듯 '나쁜 쌀'이다. 쌀에 섞여 있는, 빛깔이 붉고 질이 나쁜 쌀이다. 나쁜 쌀 연구에 매진한 이유가 궁금했다. 일반 벼 속에 섞여 있는 앵미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연구하다 앵미의 흥미로운 성질을 발견하게 된 것이 이유라고 했다.
"앵미는 일반 벼보다 생존력이 매우 강했어요. 추위, 더위, 가뭄은 물론 소금 속에 담가놓아도 사는 놈들이 있더군요. 0℃의 기온에서 1주일을 버티는 종자도 있을 정도예요." 그 때문에 서 교수는 앵미를 '잡초벼'라는 이름을 붙였다.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지만 쓸모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 교수는 이 쓸모없는 잡초벼가 앞으로 우리 인류에게 큰 일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잡초벼가 '금맥'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앞으로 기상이변이 어떻게 나타날지 몰라요. 잡초벼에는 수천여 종의 종자마다 특이한 성질들의 유전자가 담겨 있어요. 추위에 강한 놈, 더위를 이기는 놈, 물속에서도 사는 놈 등 잡초벼를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흥미로운 점들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전세계 28개 나라를 돌며 잡초벼 종자 찾기에 나섰다. 지금까지 모은 종자만 5천 종이 넘는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물러나고 더 연구할 여력이 나지 않아요. 그래서 그동안 자식처럼 키웠던 5천여종의 잡초벼 종자를 농촌진흥청 등 관련기관 6곳에 나눠줬습니다. 앞으로는 후학들이 잡초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움을 줄 생각이에요."
"벼 연구를 하는 수많은 학자 가운데 잡초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돌아서는 노(老) 교수의 뒷모습에서 쌀에 대한 진한 사랑이 느껴졌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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