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로 읽는 한권]'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입력 2008-05-28 07:44:33

목표가 없는 삶, 또 그 삶의 가치를 잃은 세상...

"나는 무엇보다 체 게바라의 도덕성과 원칙을 존중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인간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무장해야 한다. 신념을 무장시키는 것은 흠결을 용납하지 않는 도덕과 원칙이다. 우리는 모두 나약한 인간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부추기지 않으면 무너진다. 혁명은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과 원칙이다. 혁명이 무릎을 꿇고 악취를 풍기게 되는 것은 도덕과 원칙을 포기했을 때다."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유재현 지음/강 펴냄/344쪽 1만6천원

나는 그 동안 항상 뭘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목표를 이루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잠시고 곧 바로 더 어려운 목표를 설정해 스스로 채찍질했다. 그래서 현재는 미래로 가는 하나의 디딤돌에 지나지 않았다.

그 무수한 디딤돌을 밟고 미래는 항상 저 멀리 달아난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현재가 내 삶에서 소외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전거 여행은 과거와 미래를 천천히 연결함으로써 현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속도를 다투는 시간성에서 벗어남으로써 과거와 미래로부터 해방돼 무시간성 또는 초시간성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한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홍은택 지음/한겨레출판 펴냄/599쪽 1만5천원

오늘날 아날로그는 과연 낡고 가치 없는 것인가? 혁명과 자전거 같은 단어들은 우리 시대에 이미 아날로그적인가? 두 책을 다시 읽는 내내 이 의문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던 80년대의 5월은 그 핏빛 선연함을 잃은 꽃잎으로 지고 이제는 차마 잊히다 못해 박제화 되어 버린 지금, 두 책의 저자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던지는 듯하다. 목표가 없는 삶, 또 그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세상은 얼마나 아프고 허망한 것인가? 비록 책에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두 저자는 쿠바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세상의 희망을 말한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것이며 느림이라고 느끼는 것은 혁명이 낡아빠진 이념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믿기 때문이며 자전거 여행이 시간을 잃어버린 지루한 이의 몫이 아님을 믿기 때문이다. 옳고 그른 것의 잣대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이 있으되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이며 어쩌면 그것만이 인류의 역사를 지탱해 왔고 지탱해 나갈 가치라고 또한 믿기 때문이다. 낡았다는 것에는 추억이라는 울림이 있다. 가슴을 울리는 그 울림이 있는 한 낡은 것을 가치 없는 것이라고 버릴 수는 없다. 작고 낡은 배낭을 메고 느린 자전거에 몸을 싣는 것은 분명 아날로그적 삶이다. 비록 디지털이 난무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조금은 느리더라도 함께 사는 삶을 생각해본다면 5월은 아직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전태흥(여행작가·㈜미래데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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