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갈등과 감동의 이름, 아버지

입력 2008-05-24 07:25:05

그리스 신화에서 운명적인 부자(父子) 3대라면 우라노스와 크로노스, 그리고 제우스일 것이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대지의 여인 가이아의 아들이자 남편이다. 그러나 우라노스는 아들들이 흉물스럽다고 타르타로스에 가둬 버린다. 가이아는 우라노스를 없애도록 아들들을 설득하는데 막내 크로노스만 나선다. 크로노스는 낫으로 아버지의 남근(男根)을 잘라버린다.

우라노스는 크로노스에게 쫓겨나면서 그 역시 아들에게 쫓겨날 것이라는 저주를 남긴다. 크로노스도 아들에게 지위를 빼앗긴다는 예언을 믿고, 자식들이 태어나는 대로 차례로 잡아먹다가 제우스에게 쫓겨났다.

아버지는 극복의 대상이며, 아들은 언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를 공포의 대상이다.

크로노스가 아버지의 남근을 자르는 것은 상징적이다. 남근에서 태어나 남근을 부정하고, 다시 남근을 추앙하는 패러독스의 산물이 아버지와 아들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을 그린 영화의 백미라면 역시 '스타워즈' 일 것이다.'I'm your father!' 제거할 수밖에 없는 악의 화신, 숙적이 바로 나의 아버지라니. 이 혼돈과 혼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보면 루크와 다스 베이더의 대결은 제우스와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와도 닮았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를 아내로 삼았는데,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등 6명의 자식이 태어났다.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긴다는 신탁 때문에 태어난 자식을 차례로 삼켜버렸다.

마지막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 레아는 크로노스를 속여 돌을 삼키게 함으로써 제우스를 구한다. 그리고 크레타 섬의 동굴에 숨겨 키워 마침내 아버지를 추방하게 된다.

아버지를 그린 영화들은 대부분 화해 시점의 아버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평생을 두고 보면 아버지는 갈등의 대상일 뿐이다. 화해하려고 할 때 아버지는 없다. 참 간사한 것이 화해하려는 시점은 자신이 또 아들의 도전을 받는 시기다. 대부분 40대 중후반이다. 그제야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한다. 역지사지라고나 할까. 그리고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아비를 봉양하려고 하나 아비는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더라'(樹慾靜이 風不止요 子慾養이 親不待라)는 늦은 사부곡(思父曲)을 부르며 눈물을 흘린다. 5월에 떠올리는 아버지의 모습도 그렇지 않은가요?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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