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냉장고에 많으면 "우린 알부자"

입력 2008-05-24 07:31:54

먹는 것에 대해서 잔소리라고 일절 하지 않는 우리 신랑이 유일하게 잔소리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달걀이다. 어린 시절 7남매가 함께 자랐던 신랑이 눈만 뜨면 가는 곳이 닭장이었단다. 가장 먼저 가는 사람이 금방 낳은 따뜻한 달걀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단다. 할머니와 아버지 드릴 달걀을 훔쳐먹다 늘 혼이 났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맛있는 달걀을 먹기 위해서 닭장을 찾았단다. 지금도 신랑은 닭장을 찾듯 퇴근하고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마시면서 늘 달걀바구니를 눈으로 확인한다.

신혼 초기, 그날 따라 달걀을 다 먹고 미처 채워 넣지 못했다. 물을 따르다 말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린 알거지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대답도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한참 뒤에야 냉장고에 달걀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지 알고 웃었다. 다음날 달걀을 한판 사서 냉장고 가득 채워두었다. 역시나 퇴근 후 냉장고를 연 신랑, 만면에 웃음을 띠며 '우린 알부자다'라고 말했다. 나는 신랑의 웃음을 보며 오랜만에 소리내어 웃었다.

결혼 11년이 지난 지금도 신랑의 달걀 사랑은 유별나다. 근육을 만든다고 하루에 달걀 흰자 5개는 기본이다. 늘 남아도는 노른자위는 아까워 내가 해결한다. 달걀을 불에 올리고 12분 후에 불을 꺼야 반숙이 된 노른자위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달걀을 삶을 때는 바짝 신경을 쓴다. 간혹 시간을 놓쳐 노른자위가 다 익어버리면 감자를 삶아 으깨고 채에 노른자위를 으깨 샐러드를 만들어 아이들 샌드위치를 만들어 준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달걀은 특식 중에 하나였는데 요새는 먹을거리가 하도 많아 달걀 귀한 줄을 모른다. 조류독감으로 달걀도 소비량이 줄었다고 하니 더 걱정이다.

그래도 신랑은 날달걀에 젓가락으로 조그마한 구멍을 내 쪽쪽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다. 아마도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암탉이 갓 낳은 달걀의 맛을 기억하며 먹는지 모르겠다.

황정인(대구 달서구 상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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