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맥주의 탄생

입력 2008-05-22 07:00:00

맥주(Beer)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술로 알코올 도수가 낮으며, 계절에 상관없이 제조할 수 있고, 값이 비교적 저렴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주로 증류주처럼 독하지 않아 편안하게 마실 수 있고,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어 좋다. 또 모든 나라의 맥주 맛이 큰 차이는 나지 않지만 종류에 따라 색다른 맛과 향이 있어 맥주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인류가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때는 기원전 7000년경.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슈메르인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점토판을 통해 맥주 양조법의 기록을 볼 수 있다. 곡식을 이용해 빵을 구워 그 빵으로 대맥의 맥아를 당화, 물과 함께 각지로 전파한 것. 이는 북유럽의 경우 포도 재배가 어려워 각지에서 보리를 원료로 맥주를 제조하면서 그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세에는 와인과 마찬가지로 수도원에서 맥주의 양조를 담당했고, 또한 수도사들에 의해 양조기술과 원료의 개량 등을 통해 맥주의 발전이 이뤄졌다. 하지만 술로 인한 폐단에 대한 종교적 논쟁이 벌어지고, 술 양조에 제약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3세기 보헤미아의 왕 웬체슬라스(Wenceslas)는 맥주를 '고귀하고 전능한 음료'라고 생각, 교황으로 하여금 맥주제조 금지령을 풀어주도록 건의한 일도 있다. 이것이 체코 맥주산업 발달의 근간으로 작용, 체코 맥주가 전 유럽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됐다.

1516년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4세는 유명한 '맥주 순수령'을 공포, 독일 맥주산업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맥주에 여러 향료식물을 첨가했던 종전의 방식에서 탈피, 호프(Hop)만 사용토록 해 지금의 맥주 형태를 이끌어냈다.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는 품질이 안정된 맥주가 대량 생산'소비되는 '맥주의 근대화'가 이뤄진 것이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은 맥주양조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물의 이송에서부터 맥아의 분쇄, 맥즙의 교반 등에 동력을 이용, 대량 생산에 돌입한 계기가 된 것. 증기기관차는 맥주와 같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상품의 운반을 쉽게 하고 거리의 장벽을 제거, 맥주의 대량 생산과 소비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후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술이 효모의 작용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을 발견, 맥주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열처리살균법에 의해 맥주의 효모를 제거함으로써 장기보관의 길을 텄다. 덴마크의 '한센'은 파스퇴르 이론을 응용한 효모의 순수배양법을 발명, 맥주의 질을 높이고 실용화에 접목시켜 지금의 칼스버그 맥주회사인 다국적 맥주회사를 만들었다.

맥주는 구한말 때 개항과 함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왔다. 1933년 일본의 대일본맥주(주)가 영등포에 조선맥주(주)를 설립한 것이 우리나라 맥주회사의 시초이며, 같은 해 12월8일 기린맥주(주)가 역시 영등포에 소화기린맥주(오비맥주 전신)를 설립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두 맥주회사는 미군정에 의해 관리되고, 이후 적산관리공장으로 지정됐다가 51년에 민간에 불하, 동양맥주(오비맥주 전신)와 조선맥주(하이트맥주 전신)로 바뀌었다.

1992년 진로쿠어스맥주(주)가 설립되면서 국내 맥주업계는 오비맥주'하이트맥주'카스맥주 등 3사 구조가 돼 치열한 경쟁체제에 들어갔다. 그후 IMF를 겪으면서 진로의 부도로 카스맥주(주)가 오비맥주(주)에 인수됐다. 오비 또한 벨기에 인터브루사에 지분을 넘겨 실질적으로 외국의 다국적 맥주회사에 포함돼 현재는 하이트맥주만 우리나라 맥주사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신영휴(금복주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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