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위대한 역사는 동생들이 만들었다?

입력 2008-05-21 07:23:21

타고난 반항아/프랭크 설로웨이 지음/정병선 옮김/사이언스북스 펴냄

인류 최초의 살인은 형제살인이었다.

아담과 이브의 맏아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면서 우리는 최초의 살인자인 '카인의 후예'로 살아가고 있다.

형제는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동지지만 한편으로 최초로 만나는 적이기도 하다. 같은 피를 가져도 전혀 다른 태도와 습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형제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한 세기가 넘게 출생 순서를 연구하고 있다. 굳이 연구를 하지 않더라도 형은 책임감이 강하고 성취 지향적이라고 알고 있다. 반면 동생은 사회성이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편이다.

프로이트의 초기 추종자였다가 1911년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개인심리학'이라는 독자적인 학파를 세운 알프레드 아들러는 출생 순서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동생이 태어나면서 형은 '권위 있는 지위'를 빼앗긴다고 주장했다. 이런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부모를 모방하려고 노력하고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대리 부모로서 권위를 지키려고 한다. 간혹 권력에 굶주린 보수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반면 동생은 끊임없이 형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한다. 간혹 모험도 서슴지 않는다.

이 책은 '위대한 역사는 동생들이 만들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제까지 역사를 바꾼 위대한 혁명가들의 급진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을 흠모하는 남성의 숙명적이고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가 주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지은이는 전기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데카르트, 파스퇴르, 마르크스 플랑크 등 사유체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유명한 학자들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전혀 경험하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심지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주장한 프로이트조차도 대다수의 학자들보다 자신의 부모와 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지은이는 프로이트가 아닌 다윈으로 혁명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다윈은 생태계에서 동일한 자원을 놓고 둘 이상의 종이 서로 다툼을 벌일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분화가 이뤄져 자신만의 생태 지위를 만들어간다는 '분화의 원리'를 주장했다. 지은이는 이를 가족이란 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인다.

형제 또한 부모의 보살핌이라는 동일한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이며 자기만의 독특한 지위를 구축하는 '형제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형은 권력과 권위와 자신을 강하게 동일시하며 체계 순응적이며 보수적으로 커가는 반면, 동생은 모험적이며 창조적이며 현상태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항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볼테르, 마르크스, 다윈, 코페르니쿠스 등 혁명가들이 모두 타고난 반항아들이었으며, 모두 동생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다. 출생 순서와 가족관계, 거기서 나오는 창조성과 반항적 기질이 역사를 바꾸었다는 주장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과학사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지은이는 종교개혁, 프랑스 대혁명, 공산주의 혁명 등 121개의 역사적 사건과 코페르니쿠스 혁명, 진화론, 상대성 이론 등 28가지 과학 혁신, 그리고 이들에 개입된 6천566명의 전기적 자료를 바탕으로 인류 역사를 바꾼 주역들은 후순위 출생자들이며 그 반대편에 선 인물들은 맏이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역사의 제1원동력은 마르크스의 계급 갈등도,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아닌 다윈의 자연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870쪽의 방대한 분량이며 그 중 210쪽을 주석(註釋)으로 채워 넣었다.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찰스 다윈으로부터 시작해 토머스 쿤의 '위기 가설'까지 갖가지 과학적인 근거와 역사적인 사실을 현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생물과학적으로 그려낸 혁명의 이면사(史)라고 할까. 색다른 과학서를 찾거나, 역사와 인류의 생태학적 근본을 찾으려는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다. 870쪽. 4만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