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하면 가을 운동회가 제 맛이긴 하지만 가을에는 학예회, 전시회와 같은 잔치와 겹치기 때문에 봄으로 옮겨 하는 학교가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다.
우리 학교도 지난 9일 운동회를 열었다. 혹시나 너무 덥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구름이 하늘 가득하였고 바람도 솔솔 불어서 쾌적한 가운데 운동회를 할 수 있었다.
뒷정리를 할 때였다. 한 학모님이 운동장 한 켠에 모아놓은 비닐봉지와 쌀자루포대에 든 쓰레기를 땅에 쏟아놓더니 플라스틱과 병, 종이, 잡쓰레기로 분리하여 모으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하던 일을 그만 두고 그 일을 도우러 달려갔다. 뒤죽박죽으로 담아 놓은 쓰레기를 왜 그대로 두었는지 그 까닭도 알려주고 또 일도 거들고 싶어서다.
"아이고, 학모님 고맙습니다. 이 쓰레기를 분리수거함이 있는 뒤뜰에 갖다놓고 천천히 다시 나누어 담으려고 우선 이렇게 모아 놓았습니다." 이는 변명이 아니라 그렇게 하려고 이미 기능직 아저씨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터다. "누구라도 할 일인데 뭘요." 학모님은 맨손으로 열심히 분리를 하면서 계면쩍게 웃었다. "장갑도 안 꼈네요. 장갑을 갖다 드릴까요." "교감 선생님, 괜찮습니다. 다 하고 씻으면 됩니다."
나도 맨손이지만 학모님이 하는 일을 거들었다. 조금 덜 미안했다. 학모님은 부지런히 맨손을 놀렸다. 내용물이 들어 있는 병이나 플라스틱 그릇은 뚜껑을 열어서 깨끗하게 쏟아내기까지 했다. 또 쓰레기를 담았던 검은 비닐봉지가 많이 남으니까 그걸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챙기는 알뜰함까지 보였다.
시간이 꽤 걸려서 우리 두 사람은 깨끗하게 분리를 다 하였다. "학모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몇 학년 학모님이지요?" 일을 하면서 이런 저런 물음에 대답을 잘 하시던 학모님이 얼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아이가 몇 학년이지요?" "3학년입니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짤막하게 답했다. "3학년 몇 반인데요?" 또 대답을 하지 않더니 한참 뒤에 아주 짧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냥 3학년입니다." '그냥 3학년.'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예, 저도 그냥 물어봤어요."
이렇게 농담으로 얼버무렸지만 '그냥 3학년'이라는 그 말이 아름답게, 정말 아름답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학모님, 그런데 저는 진짜 그냥 물은 게 아닙니다. 학교에 있다보면 참으로 마음이 예쁜 아이를 심심찮게 만납니다. 그럴 때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누굴까 궁금합니다. 반듯한 아이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부모님이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모님, 그날은 그 반대로 학모님 아이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냥 3학년입니다"라고 말하는 학모님의 자녀는 도대체 누굴까 그게 궁금했습니다. 학모님, 정말 존경합니다.
윤태규(대구 남동초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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