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발전이 公개념이다"…公기업 새 역할론

입력 2008-05-19 10:00:41

신정부가 출범하면 '공기업'은 항상 구조조정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한해 수조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수천명의 직원을 고용한 거대 공기업이 수두룩하지만 방만한 경영과 비효율적인 경쟁력 등으로 인해 '공기업 역할론'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경제 원리에 따른 잣대가 아니라 지방의 눈높이로 공기업을 평가한다면 '비판'의 강도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사회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지방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공기업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김종웅 대구한의대 유통경제학부 교수는 "공기업이 출범할 당시인 1970~1980년대와 달리 현재는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 등 각 부문별 양극화 해소에 공기업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인데 지방화에 대한 경영 방침이나 기여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지역 균형 발전에 맞춘 새로운 모델 제시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보다 지방에 더욱 인색한 공기업

대한주택공사는 지방 부동산 업계에서 '큰손'으로 통한다. 올 한해 대구경북 지역에서 공급하는 아파트가 1만1천가구. 부동산 시장 침체로 민간 분양이 줄면서 지역 전체 분양 물량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본부 내 직원이 300여명에 이르며 올 한해 지역 내 사업 예산이 7천억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대구경북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엄청나다.

그러나 사업 결정이나 공사 발주 등에 있어 지역본부의 역할은 거의 없다.

주공 대구경북 본부 한 간부는 "지역에서 발주할 수 있는 공사는 2천만원 이하 하자 보수 공사 정도"라며 "공사 자재 구매 및 하도급 업체 선정 등 주요 업무 대부분이 본사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지역본부는 현장 감독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주공뿐 아니다.

토지공사나 도로공사, 수자원 공사 등 건설 부문 발주량이 많은 4대 공기업 모두가 동일한 실정. 매년 지역에서 쏟아붓는 사업 예산이 엄청나지만 전체 공사 물량 중 지역 업체 하도급 비율은 고작 20%대를 넘나들고 있다.

실제 2006년의 경우 4대 공기업이 대구경북에서 발주한 공사금액은 1조2천100억원에 이르지만 이중 지역업체가 수주한 금액은 1천460억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대구시회 정화섭 부장은 "대구시나 경북도 발주 공사는 지역업체 발주 비율이 60~70% 이상을, 역외 대형 민간 건설사도 시도의 노력으로 지역 하도급 비율이 평균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4대 공기업은 발주 물량에 비해 지역 기여도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으며 지역업체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상당하다"고 밝혔다.

◆지역 따로 사업 따로

수도권과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지방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공공 부문 인프라 구축이 가장 시급한 과제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역할을 위임받은 공기업의 협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과의 유기적인 협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각 지역별 본부가 있지만 모든 결정 권한이 서울에 집중돼 있어 '지방의 눈높이'에 맞춘 역할 수행이 쉽지 않은 탓이다.

더욱 심각한 경우는 지역 여론을 무시한 일방통행식 사업 결정이다.

주택공사가 2006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북구 연경동 택지개발과 달서구 임대 주택 사업 등이 대표적 사례로 대구시나 달서구청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이 진행됐으며 산업단지와 유통단지 개발을 담당하는 토지공사도 현안 사업에 대해 시도와 불협화음을 빚는 사례가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특히 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 관리 공단 등 복지 분야의 4대 공기업도 지역 특화 서비스를 위해서는 '지방화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

수도권과 지방 간의 의료나 복지, 소득 수준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지만 사업 추진과 결정권한이 본사에 있어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준의 공적 서비스 기능만 수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공기업의 경우 '지방'으로의 권한 위임을 시도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2006년부터 지사를 9개 사업부로 전환해 지역사업부가 예산 편성과 운영 권한을 갖는 책임 경영 체제를 구축, 운영하고 있으며 대구사업본부는 슬로건을 '예스 대구(YES DAEGU), 퍼스트 대구(FIRST DAEGU)'로 내걸 정도로 지방화에 노력하고 있다.

또 국민건강보험 공단도 올 연말부터 전국을 서울, 경인, 대구, 부산 등 6개 지역본부 체제로 개편한 뒤 각 본부에서 통합 관리하는 인사와 예산 등 경영권을 지역본부로 위임해 운영하는 '지역본부별 독립채산제' 운영을 추진키로 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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