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인가? 이 질문은 우문일 수 있다. 세계문학이 각 나라의 국민문학들을 총칭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한국문학은 당연히 세계문학의 일부일 터이다. 그렇지만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어색한 것 같고 두 용어가 서로 걸맞지 않다는 느낌도 든다. 어린 시절부터 세계문학을 접해온 독자에게는 한국문학은 한국문학이고 세계문학은 세계문학이기 때문이다. 세계문학이라면 영문학이나 불문학, 독문학 같은 서구문학에 러시아 문학을 포함한 정도가 일차적으로 떠오르고, 여기서 좀 더 영역을 넓히면 1970년대부터 각광을 받은 남미의 문학이나 동양권의 인도, 중국, 일본문학 정도까지 떠올릴 수 있겠다. 그렇지만 여기에 한국문학의 자리는 별로 없다. 이것은 우리 독자의 의식에서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세계문학의 지형을 구성함에서 한국문학은 거의 존재가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세계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학이 세계문학에서 합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못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구의 문화강국들이 문학에서도 중심을 차지해온 지 오랜데 비해 한국은 근대문학의 역사로 보자면 매우 일천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한국문학의 형성 자체가 희랍 고전에서부터 현대 모더니즘 문학에까지 이르는 서구문학의 전통에 힘입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우리 출판계가 세계문학 전집을 내면서 한국문학을 제외해온 관행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비록 짧은 근대문학의 여정이지만 한국문학에서 세계적인 의미를 가질 만한 작품들이 산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인 곤경에 맞서면서 민족상황을 토대로 하여 인간 보편의 삶의 진실을 깊이 탐구한 걸작들이 적지 않게 탄생하였다. 얼마 전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의 '토지'도 그 한 예일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번역이다. 아무리 우리 모국어로 훌륭한 작품적 성취를 이루어도, 그것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당국의 독자에게 읽히지 않으면 그 작품은 세계문학의 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토지'만 하더라도 몇몇 언어로 일부분이 번역되어 있고, 특히 독일어와 중국어로는 작품 전체의 번역이 현지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 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잇달아 거론되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고은 시인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번역된 작품은 10여 언어권 40종 내외에 그친다. 이에 비하면 동양권에서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경우, 70년대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든 90년대의 오에겐자부로든 수상 당시에 각국으로 번역된 작품은 각각 150여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일본문학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그 힘의 연원은 바로 번역에 대한 일본의 투자와 관심이었던 셈이다.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터키의 오르한 파묵이 내한해서 국내 작가들과 공개대화를 나누었고,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참여한 중국에서는 스무명이 넘는 대규모 작가단을 파견하였으며, 필자가 맡고 있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초청으로 다섯 대륙에 걸쳐 20명의 촉망받는 젊은 작가들이 금주에 열리는 한국 젊은 작가들과의 문학축제를 위해서 속속 입국하고 있고, 이달 말에는 포항에서 아시아문학포럼이 개최되어 아시아 각국의 주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바야흐로 국제 문학교류의 계절이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괴테가 말하는 민족문학 사이의 교류를 통한 세계문학의 이념이 이 땅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교류의 토대가 되어야 할 한국문학의 해외번역은, 최근의 많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질 면에서 크게 미흡하다. 필자는 맡은 일이 일인지라 이 모든 국제교류에 관여하거나 참여하게 되었는데, 얼마 전 오르한 파묵의 방한을 맞아 관저에서 작은 환영만찬을 연 터키대사의 말이 기억에 새롭다. 터키문학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최근 파묵의 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일 뿐이고, 터키문학 전반에 대한 소개와 이해는 태부족이거니와 터키에 소개된 한국문학도 모두 다섯 권 정도로 미미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작품이 터키어로 번역되고 터키작가들도 한국에 더 소개되어서, 서양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계문학에서 탈피하는 데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언이다. 또 고은을 비롯한 한국시의 애호가인 그는 일본이나 중국문학에 비해서 한국문학 번역작품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호소하였다. 유럽 중심도시를 가든 이스탄불을 가든 싱가포르를 가든, 일본문학은 늘 대형서점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문학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이 현실을 크게 개선하지 않으면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자부심이 아무리 커도 선진국에 진입하고자 하는 우리의 여망은 꿈에 불과할 것이다.
윤지관(한국문학번역원장, 덕성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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