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한 것 맞습니까" "예"…30초만에 남남으로 확인
오는 21일은 '부부의 날'(2007년 5월 제정)이다. 21은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다. 부부가 '일심동체'가 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이 좋으련만 상당수 부부는 평생 갈등 속에 살아가고, 간혹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만 준 채 '이혼'이라는 종착역에 정차한다. 결혼의 종지부를 찍는 이혼법정, '가정의 달'을 맞아 찾아간 이곳은 더욱 쓸쓸해보였다.
◆치열한 공방 속 이혼법정
지난 16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가정지원 1호 법정. '이혼'이라는 마지막 결정조차도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 부부들이 찾는 이곳은 의외로 차분했다. 이날 처리된 7건 중 3건의 사건에만 이혼 당사자들이 참석했다. 나머지 재판에서는 대리인(변호사) 간 공방만 이어졌다. 결혼의 막장에서조차 마주 대하기 싫은 것일까. 냉랭한 법정에는 변호사들만 띄엄띄엄 드나들 뿐이었다.
오전 10시 정각에 시작된 재판의 첫 사건은 최종 선고였다. 남편의 무능함을 견디지 못해 아내가 이혼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심사숙고 끝에 기각했다. 정용달 판사(가정지원장)는 "어린 쌍둥이 자녀가 있기 때문에 이혼을 허락하지 않은 것일 뿐, 남편이 잘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니 명심하고 앞으로 다시 이혼소송당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외도 때문에 아내로부터 이혼청구를 당한 40대 남성은 'TV처럼 해달라'고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 그는 재판부에 "죽어도 이혼할 마음이 없다. TV드라마처럼 한번만 아내를 만날 기회를 만들어주면 싹싹 빌어보겠다"고 부탁했다. 재판부는 이 남성의 부탁을 받아들여 조정기일을 잡았다. 조정기일에는 사건 당사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의사를 조율한다.
재산분할을 둘러싼 다툼은 이혼법정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이 경우 곧잘 재산보다는 자존심을 건 싸움으로 돌변한다. 이날 나온 30대 부부의 경우 재산분할액이 1억2천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재판부가 "판결을 통해 결론을 내봤자 서로가 감정적으로 승복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소송을 불러올 뿐"이라며 설득했지만, 두 사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사랑의 끝
오후 4시에는 협의이혼 법정이 열렸다. 재산분할, 양육권 지정 등의 의견 조율을 끝내고 재판부 앞에서 최종적으로 이혼을 확인받는 과정만을 남겨놓은 부부들이 찾는 곳이다. 이제 더 끓어오를 감정마저도 남아있지 않는 '막장' 부부들은 씁쓸하고 허전한 마음을 어쩌지 못한 채 대기실을 서성이다 법정으로 향했다. 대기실에 앉은 한 부부는 남남처럼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이날 참석한 부부는 40쌍이었다.
결혼의 시작은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그 끝은 너무나 간단했다. 걸리는 시간은 30초 남짓. 이름이 호명되면 판사 앞에 나란히 선다. "이혼에 동의한 것이 맞습니까? 아이는 엄마(혹은 아빠)가 키우기로 합의한 것 맞습니까?" 딱 두 질문에 "예"라고 짧게 대답하면 끝이다. 곧장 구청에 들러 이혼 서류를 접수시키기만 하면 영영 남이 된다.
40대의 한 남성은 판사의 질문에 마지못한 듯 "예"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남성은 아직까지 미련이 남아있는 듯한 눈치였지만, 그의 아내는 어색한 30초가 흐르기 무섭게 법정 문을 빠져나갔다.
결혼 생활에는 종지부를 찍었지만 여전히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부부도 몇 쌍 있었다. 법원을 나와서도 손 한번 다시 잡아보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어딘가로 향했다. 차경환 판사는 "채권자의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해 '위장 이혼'을 하는 부부의 경우에는 손을 꼭 잡은 채 법정에 서는 경우도 있다"며 "젊은 부부들은 함께 살았던 세월마저 허무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싫어 애써 감정을 숨긴 채 다정한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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