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허 찔린 실용외교

입력 2008-05-15 11:11:27

광우병'對北행보 갈피 못 잡아/국민과 소통 무시한 獨善 화근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기인으로 꼽히는 제나라 장수 田單(전단)은 뛰어난 기지와 군사적 재능을 가진 인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연나라의 침공에 제나라가 패망 위기에 몰리자 온갖 기묘한 계책으로 이를 막아내 하급관리에서 일약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사기'에 보이는 그의 계책은 고도의 현대 심리전이나 공작정치를 보는 듯하다. 연나라 왕과 유능한 장수 사이를 이간질시켜 제거하거나 적장을 매수해 공격의 고삐를 늦추기도 한다. 뿔에 칼날을 붙들어 매고 꼬리에 불을 붙인 소를 몰아 적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첩자를 풀어 연나라 군사들이 제나라 포로의 코를 베고 조상 무덤을 파헤치도록 유도해 자기 군사와 백성의 분노와 전투 의지를 고취시키기도 했다. 전단의 이런 전술에 대해 사마천은 "용병의 도는 정공법으로 싸우고 기이한 계책으로 허를 찔러 이기는 것"이라며 "그의 계책은 처음 보기에 약하게 보여 적이 방심하지만 나중에는 막으려고 해도 도저히 막을 수 없게 만든다"고 치켜세웠다.

이명박 정부가 '실용외교' 간판 내걸자마자 헛다리부터 짚었다. 쇠고기 민심에 거의 그로기에 몰리고 대북 행보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핵신고로 북핵 프로세스가 급피치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북측 전술에 휘말려 손쓸 방도 없이 궁해졌다. 민심 살피랴, 미국 눈치 보랴 눈이 여럿이라도 벅찰 지경인데 북한은 '通美封南(통미봉남)' '通民封官(통민봉관)' 노래하며 속을 썩인다. 3개월 새 대통령 지지도는 거의 반토막 났다. 자초한 광우병 역풍에 그간 실용외교에 고개 주억거리던 민심이 이제는 아예 실용외교 해부하겠다고 메스를 들이댈 기세다.

그러나 대북 해법에 있어 운신의 폭이 좁다면 가급적 움직이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조바심내며 안달하거나 훈수에 공연히 깨금발이나 하다가 엎어질 수 있다. 이번 쇠고기 파동도 한미 관계 복원에 온통 시선이 쏠려 방미 선물만 덥석 안겨주다 안방에서 뒤통수 맞은 것 아닌가.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각 분야의 정책 집행에 있어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며 소통을 강조했다. 지금은 북측과의 소통보다 국민과의 소통이 우선이다. 사공 밀치고 무작정 노 잡기보다 민심 먼저 다독이고 내놓을 수가 무엇인지 따져 보는 게 바른 순서다.

일본은 북핵 6자회담 과정에서 납치문제에 집착하다 거의 왕따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하든 말든 대북지원 할당에 가타부타하지 않고 대북 경제 제재 6개월씩 연장하며 관심없다는 듯 지켜보고 있다. 미국을 움직여 그나마 돌파구를 열어보려는 것이 전부다. "납치문제 해결 없이 대북 관계 개선 없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기존 대북 정책기조를 뒤엎고 새 판을 짜는 '창조적 파괴'도 생각해봄 직하다. 과거 정부 때로 되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북측이 하는 대로 내팽개쳐 두라는 것이다. 통미봉남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지켜보는 것이다. 통일 기반 조성한다고 어설프게 마구 퍼주다 10년 보내고 북측 간만 키워 놓았다면 이제 무엇 하나 교훈을 얻어야 한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통일부가 '자아비판'까지 한 마당에 실리에 한눈팔다 명분마저 잃을 수는 없다. 오리알 신세 걱정해 요청도 않는 식량 지원한다고 달라질 것 없고, 한미 공조 주문 넣고 북측 압박한다고 그들이 번듯한 자리 내어줄 리 만무하다. 식량 지원이나 인권 문제는 조용히 짚고 넘어가면 되고, 북핵 프로세스도 6자회담에 맡겨 놓으면 별 무리 없다. 김정일이 "지금 인민들의 먹는 문제 해결보다 더 절박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고 고백하는 터에 미리 나댈 이유 없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경제난, 식량난을 풀 돌파구를 온통 미국에 기대는 눈치다. 그럴수록 우리는 느긋이 기다리는 게 맞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스스로 체질을 바꾸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체질이 바뀌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실용과 생산성을 정책추진 원칙으로 삼고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전략전술을 암중모색해야 할 때다. 햇볕 써먹었으면 이제 여우 스스로 굴을 나오도록 연기라도 피워라.

徐 琮 澈 논설위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