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양 '문학기행'

입력 2008-05-15 07:16:46

문향에 젖는 행복감, 누려 보시지요!

여행에는 여러가지 묘미(妙味)가 있기 마련이다. 볼거리가 많아 눈이 즐거운 여행이 있는가 하면 풍성한 먹을 거리로 입이 행복한 여행도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최고를 꼽으라면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통해 입과 눈이 호사를 누리는 것도 좋겠지만 한층 성숙된 자아를 발견하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북 동북부에 자리잡은 영양! 오일도·조지훈·이문열 등 많은 문인을 배출한 영양은 '문학기행'을 통해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을 하기에 제격이다. 신록이 짙어가는 영양에서 문인들의 자취를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푸르르지고, 정갈해지는 느낌을 얻는다.

영양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로 잘 알려진 이곳은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한국 현대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조지훈(1920~1968)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시인 신경림은 책 '시인을 찾아서'에서 조지훈에 대해 '멋과 지조의 시인'이라고 했다. 한양 조씨 집성촌인 주실마을 복판에 자리잡은 조지훈의 생가를 찬찬히 둘러보면 시인이 멋과 지조의 시인이 된 연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호은종택'으로도 불리는 생가는 조선 인조 때 지은 집. 경북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양반가의 모습인 ㅁ자형집으로 정침과 대문채로 나누어진다. 정침은 사방 7칸이며, 정면의 사랑채는 정자 형식이다. 집 앞의 조지훈의 생가임을 알리는 돌비가 눈에 띈다.

경북도 기념물 제78호인 조지훈의 생가는 6·25 때 일부가 소실되는 수난을 당했다. 그러나 시인의 집안 사람들이 당한 수난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조부 인석은 새 체제의 박해에 분개해 연못에 투신 자결했고, 부친 헌영(제헌의원)은 남하하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 납북됐다. 수백년의 역사가 어린 생가는 시인의 체취와 더불어 집안의 아픈 역사도 더불어 간직하고 있다.

생가에서 200여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지훈시공원과 지훈문학관이 있다. 작은 계곡을 따라 오르도록 돼 있는 시공원에는 조지훈의 동상과 시 27편이 돌에 새겨져 있다. 교과서에 실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시 '승무' 옆에는 춤을 추는 동상도 있다. 한들거리는 봄바람 속에서 그의 시를 하나하나 읽으며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시인의 꼿꼿한 마음이 느껴진다. 문학관에서는 시인에 대한 자료들을 전시, 그의 체취에 젖을 수 있다.

신경림 시인은 '고사(古寺)1'을 읽지 않고는 지훈 시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썼다. "木魚를 두드리다/졸음에 겨워/고오운 상좌아이도/잠이 들었다/부처님은 말이 없이/웃으시는데/西域 萬里길/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조지훈의 생가에서 31번국도를 타고 영양읍을 거쳐 감천리에 가면 오일도 시인의 생가가 있다. 표지석이 너무 작아 자칫 하면 놓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애국시인 일도(一島) 오희병(吳熙秉·1901~1946)은 '노변의 애가'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등이 대표작. 시전문지 '시원'을 창간해 한국현대시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황량과 조락이 주조를 이룬 그의 시엔 민족의 얼과 정과 한(恨)이 스며들어 있다. 시 '올빼미'에서 시인은 "한낮에도 광명(光明)을 등진 반역(反逆)의 슬픈 유족(遺族), 오오 올빼미여! 자유(自由)는 이 땅에서 빼앗긴지 오래였나니"라며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개탄한다. 그러나 곧 절망을 넘어 희망을 노래한다. "여름 긴긴 해 울로(鬱怒)의 하루가 저물면, 세상이 다 자는 너 대기(待機)의 밤은 이제 오리니. 쭈구린 날개를 펴고 창공을 향하여 바람같이 번개같이 밤을 일지 말아라"라고 읊었다.

오일도 생가는 정침과 대문채로 돼 있다.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7칸의 ㅁ자형 뜰집이고 대문채는 一자형이다. 엄혹한 일제시대를 살면서도 시인은 고매한 정신과 올곧은 절개를 끝까지 지켰다. 단아한 모습의 생가를 돌아보면 새삼 시인의 대쪽같은 마음이 가슴에 와닿는다.

석보면 두들마을은 조선시대 때 광제원이 있었던 곳으로 석계 이시명과 그의 후손 재령 이씨들의 집성촌. 석계고택, 석천서당 등 전통가옥 30여채와 동대·서대·낙기대·세심대라 새겨진 기암괴석을 비롯해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 안동장씨 유적비 등이 있다. 특히 이 마을은 이 시대 최고의 소설가 중 한사람인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해 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 '선택' 등 많은 작품 속에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지는 무대가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가볼만한 곳

'선바위.남이포' 영양이 꼽는 최고 관광지

선바위와 남이포는 영양 관광지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외지인들이'볼 만한 곳'을 물으면 영양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곳을 꼽는다. 입암면 연당리에 있는 선바위와 남이포는 반변천과 청계천이 합류하면서 절경을 만들어냈다. 선바위관광지에서 다리를 건너 아슬아슬한 절벽 밑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남이정'이란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선바위와 남이포의 풍광이 백미다. 강 건너 절벽에 촛대같이 하늘로 치솟은 바위가 바로 선바위. 또 남이포는 조선시대 남이 장군이 모반세력을 평정한 곳이라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즐길거리

향긋한 '산나물 한마당' '지훈예술제'

이번 주말 영양에서는 자연과 문학의 향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축제들이 열린다.

먼저 '웰빙 영양 일월산 산나물 한마당'이 16~18일 황용천복개지·일월산·영양시장 등에서 열린다. '일월산 봄처녀의 향긋한 유혹'이라는 테마로 열리는 축제에서는 산나물요리 경진대회, 산나물 채취체험활동, 산나물 시식코너 , 먹을거리 장터 등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된다.

또 17,18일 영양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 일원에서는 '2008 지훈예술제'가 열린다. 문학강좌, 지훈백일장, 시와 음악의 만남 행사 등을 통해 참가자들은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문의 054)680-6067.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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