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미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자로 초대된 빌 게이츠는 "말라리아, 결핵 등으로 전세계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보고 세계 불평등 해소를 위해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불평등 문제는 답이 간단하면서도 무자비하다(The answer is simple, and harsh)"고 지적한 게이츠는 돈이 없거나 보이지 않는 시장의 통제 때문에 죽음에 내몰리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시장의 긍정적인 힘을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인류를 괴롭히는 질병과 불평등 문제는 세계 최고 갑부에게도 쉬 풀기 힘든 고민이요 도전의 대상인 것이다.
1882년 로버트 코흐가 결핵균을 밝히기 전까지 '흰색 역병'으로 불렸던 결핵이 우리에게 다시 현실이 됐다. 영국에 입국하는 우리 유학생들이 X선 사진을 가져가지 않으면 공항에서 결핵 검사를 받아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됐다는 보도다. 그나마 유학생만 이런 편의를 받게 되고, 6개월 이상 장기체류 한국인은 무작위로 X선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한국을 '결핵보유국'으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저개발국 입국자들과 함께 줄 서서 X선 촬영을 받아야 하는 무자비한 현실이 된 것이다.
한국은 1965년 활동성 결핵환자수가 120만명에서 2005년 약 17만명으로 감소해 결핵관리가 잘된 나라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2004년부터 다시 증가해 이제 결핵이 한국인 사망원인 10위에 올랐다. 매년 인구 10만명당 7명이 결핵으로 사망하는데 OECD 30개국 중 결핵사망률 1위다.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일본의 4배, 미국보다 22배 더 높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2007년 한 해 결핵으로 신고된 새 환자만도 3만4천710명이다.
결핵은 약만 꾸준히 복용해도 낫는 질병이다. 국가가 철저히 관리만 한다면 충분히 줄일 수 있다. 문제는 한국처럼 도전이 느슨해진 경우 언제든 질병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결핵퇴치 2030계획'을 수립해 추진중인 것은 다행이다. 이제부터라도 공중보건체계나 사회안전망에 부실한 부분은 없는지 살피고 정비해야 한다. 선진국이란 소득이 높은 개발국의 의미가 아니다. 질병이나 재해 같은 외부 충격에 강한, 내재적 힘을 가진 잘 짜여진 사회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결핵은 밝고 건강한 선진국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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