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4시쯤 대구 달서구 상인동 한 대단지 아파트 내 '영어마을'. 1층 공동시설 내 100㎡의 공간에 마련된 이곳에서는 초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영어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원어민 강사가 칠판에 적은 영어 단어를 따라 읽거나, 뒤늦게 교실문을 열고 들어온 학생들에게 "Hello!"를 외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이곳은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아파트 입주민 수백여명이 활용하고 있다. 매주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실용회화, 작문, 글짓기, 게임 등이 쉴새없이 이뤄진다.
영어마을 운영자는 "영어공부보다는 학교, 학원에서 배운 영어를 함께 활용하는 공간으로 보면 된다"며 "교재나 시설 이용은 모두 무료이며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민에게는 전액 무료이고 교사 인건비, 교재비 등은 아파트 시행사에서 부담하고 있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영어마을'에 대해 행정당국이 '불법강의'로 규정, 제재 방침을 밝히면서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주택법상 학원은 주민공동시설이 아닌 상가에 설치해야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 영어마을 대부분은 주민공동시설 내에 만들어진 불법 용도지역이기 때문.
대구시교육청 평생교육계 손미옥 장학관은 "단지 내 영어마을은 건축법상 허가되지 않은 곳에서 영어라는 교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에 정부가 '불법영업'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대부분 아파트가 영어마을을 등록하지 않아 현황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영어마을은 당초 분양 마케팅 전략으로 큰 인기를 모은데다 활용도까지 높아 제재방침에 대한 주민 반발이 거세다.
달서구 파호동의 한 대단지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일주일에 한차례씩 무료로 아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며 "순수 봉사 목적으로 운영되는 영어마을이 장소 문제 때문에 불법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곳은 관리사무소 2층에 약 240㎡ 규모의 문화센터를 만들어 꽃꽂이, 종이접기, 서예, 한문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 오후 입주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영어수업을 하고 있다.
영어마을을 둔 아파트 단지의 반발도 심하다. 아파트사랑시민연대에 따르면 대구에서 영어마을을 둔 아파트는 동구 S아파트, 달서구 S아파트, M아파트, 남구 W아파트 등 10곳 정도로 파악되고 있지만, 대부분 주민공동시설에 입주해 있어 정부 방침대로라면 활용 중단을 하거나 시설 이동을 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사랑시민연대 신기락 사무처장은 "정부가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무료로 운영되는 단지 영어마을을 불법강의로 몰아세우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며 "아파트 입주자들, 건설업계 등과 연대해 영어마을 활성화를 위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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