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촌동 망치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수제화 골목을 아시나요?'
대구에 30년 이상의 전통을 간직한 수제화 골목이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 골목은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만드는 수제화 가게들이 즐비하다. 10여년 전부터 교동시장 등지에 산재하던 공장들이 이 거리에 모이면서 수제화 골목으로 이름나기 시작했다.
'톡 톡 톡…'경상감영공원 뒷 골목, 대구 중구 향촌동 일대에는 작은 망치 소리가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끊이질 않는다. 대부분 영세한 공장들로 직원 7명 이상의 공장들만 40여군데. 2~3명 규모 공장까지 포함하면 100여곳 가까이 된다고 상인들은 추정한다. 상인들은"북성로 입구에서 여기까지 건물 2층은 거의 다 구두공장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수제화 전문 매장도 25~30여곳에 이른다. 매장들은 각기 공장들과 직거래하며, 저마다 개성있는 신발을 만들고 있다. 한때 기성화, 뒤이은 중국산에 밀려 수제화 골목은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지난해부터 서서히 골목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김해·마산·진주 등 타지에서도 많이 찾는다.
아미콜렉션 박연득 사장은"사람들이 저가 중국산 신발 품질에 실망하고 다시 수제화 골목을 찾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수제화 골목의 제품들은 가죽에서부터 깔창까지 거의 대부분의 소재를 국산으로 ㅆ는 것이 특징. 인터넷 쇼핑몰은 운영하지 않는다. 모방 우려 때문이다.
발이 콤플렉스인 사람들도 여기에 오면 원하는 디자인의 신발을 신을 수 있다. 어떤 발이라도 '1대 1' 맞춤이 가능하기 때문. 발사이즈 210mm에서 270mm까지, 기성화가 맞지 않는 특수한 크기나 모양의 발을 가진 사람들이 수제화 골목을 주로 찾는다.
비록 영세 규모이긴 하지만 저마다 디자인 경쟁도 치열하다. 망사를 직접 디자인하고, 통굽이 강한 집, 외굽이 강한 집 등 매장마다 특성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백화점·아울렛·제화점 등으로 팔려나간다. 이 때문에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른 후 이 골목에서 비슷한 디자인을 구입하는 단골도 꽤 된다. 가격은 백화점의 3분의 1, AS는 무한대. 상인들은'고객의 발은 내가 책임진다'란 사명감을 갖고 있다.
고객들도 대만족. 수제화 골목 마니아 김옥순(62·대구 서구 평리동)씨는"싸고 질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어 자주 찾아요. 편하고, 실용적이어서 자주 오는 편이죠"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종로제화 신기순씨는"공장과 매장이 직거래 하니, 중간 마진이 없는 것이 이곳의 최고 장점"이라고 말했다.
대구에 오랜 터를 잡고 있어서인지 수제화에는 대구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대구사람 특성상 고전적인 디자인이 인기다. 만드는 과정도 고지식하다. 아미콜렉션 박 사장은"일반 고객들은 뒤꿈치를 비닐 소재로 마무리해도 몰라요. 그래도 수제화 골목에선 허용이 안되죠. 발이 편해야 하니까, 작은 소재 하나도 모두 가죽으로 사용해요. 그게 이 골목 사람들의 자존심입니다."
'기술력 하나는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골목의 활성화를 위해선 남은 과제가 많다. 40년 경력의 한 기술자는 "제조업이 내리막길로만 가고 있으니 배우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가르칠 여유도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40~50대 기술자들이 손을 놓으면 수제화 기술은 대가 끊어질 운명이라는 것.
이렇게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먹고 살기 바빠'그 흔한 조합 하나 없는 것도 문제. 상인들은 이 때문에 골목의 발전이 안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로씨모다 김오철 사장은 수제화 골목도 특구로 지정됐으면 하는 바람이다."이제 부산 수제화도 그 명맥을 잃고, 서울 성수동과 대구 향촌동 밖엔 없어요. 수제화는 기계화가 못 따라가는 장점이 많은만큼 대구사람들이 많이 아껴줬으면 합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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