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과 신발]감동의 발

입력 2008-05-08 07:51:15

발은 말합니다, 당신이 흘린 땀을

평발이란 핸디캡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된 박지성의 맨발.(왼쪽), 피멍으로 얼룩지고 고목나무와 같은 발레리나 강수진의 맨발.
평발이란 핸디캡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된 박지성의 맨발.(왼쪽), 피멍으로 얼룩지고 고목나무와 같은 발레리나 강수진의 맨발.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 경기 결승점. 아프리카 오지 국가인 에티오피아 출신의 한 무명 마라토너가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의 이름은 비킬라 아베베. 2시간15분16초02로 세계 신기록을 세운 그의 쾌거에 환호하던 관중들은 그의 발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아베베가 맨발로 전 구간을 완주한 것. 다른 선수의 부상으로 급히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신발이 맞지 않자 아예 맨발로 경기에 출전, 당당히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신기록 갱신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 이후부터 그는 '맨발의 왕자'로 불렸다. 아베베의 금메달 획득에 조국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열광했다. 5년이나 에티오피아를 지배했던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아베베가 맨발로 누비며 우승을 차지하자 더욱 감격스러워한 것이다.

사실 아베베가 맞지 않는 운동화를 버리고 맨발로 마라톤에 출전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세계적 신발 메이커인 나이키의 스포츠과학연구소에 따르면 맨발은 어떤 운동화의 충격 흡수 시스템보다 더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 맨발이 땅에 닿을 때 발뒤꿈치부터 발바닥 전체, 그리고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압력이 골고루 분산되며 발과 다리의 필요한 근육이 고르게 사용된다. 또 발을 해방시키는 것은 피부 호흡을 통해 심리적·생리적 안정을 얻는 효과도 있다.

아베베의 맨발 못지 않게 최근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것이 발레리나 강수진씨와 축구선수 박지성의 맨발이다. 몇년 전 인터넷에서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라는 이름의 사진 한 장이 떠돌며 네티즌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줬다. 무대 위에서 요정처럼 빛나는 프리마 발레리나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피멍으로 얼룩지고 흡사 고목 같아 보이는 두 발이 충격과 함께 가슴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 것. 그녀의 발에는 하루 열아홉시간씩 지독하게 연습에 매달렸던,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짙게 배어 있었다. 남들이 2~3주 동안 신는 토슈즈를 하루 4켤레나 갈아 신을 만큼 혹사 당했던 두 발은, 지금의 성공과 박수 갈채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고 똑똑히 말해주고 있다는 평가다.

결혼 전 남편이 발이 못생겼다고 놀리면서 재미로 사진을 찍어뒀고, 방송사 PD가 그 사진을 카메라로 찍어 다큐멘터리에 방영한 후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 인터넷으로 퍼져나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강수진씨는 자신의 발 사진에 대해 "사실 남에게 잘 보여주지 않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요즘도 한번 공연을 마치고 나면 발과 다리의 아픔이 엄청나다. 이럴 때마다 인터넷 사진과 그 사진 밑에 올려진 댓글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했다.

광고에도 등장한 적이 있는 박지성 선수의 맨발도 사뭇 감동적이다. 평발이란 핸디캡을 안고서도 어릴 때부터 맨발로 공을 차기 시작한 박 선수의 터지고 까져서 울퉁불퉁한 발은 그의 근면성과 노력을 보여주고, 성공과 대가를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발이 곧 박지성을 의미한다는 얘기도 나올법하다. 박 선수의 맨발을 보고 쓴 한 대학 신입생의 글을 보면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줬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박 선수를 부러워하고 질투만 하고 있을 때, 나의 그러한 생각과 태도에 크나큰 변화를 주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됐다. 그 사진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박 선수의 맨발 사진이었다. 수 많은 국민들이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그 사진을 나도 인터넷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축구선수로서 겉으로 보여지는 박지성 선수의 화려함과는 정반대 되는, 볼품 없는, 굳은살과 상처투성이의 못생긴 발이었다. 나는 그 발을 본 순간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다이엘 데이 루이스가 열연한 영화'나의 왼발'에서도 감동의 발을 만난다. 뇌성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오직 움직일 수 있는 왼발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크리스티 브라운의 실화를 통해 관객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