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평생 가족에 헌신하고 "그래도 미안타"

입력 2008-05-03 07:57:21

나의 어머니는 그 철없는 열여섯 살에 시집을 와서 올해 일흔아홉의 나이가 되셨다.

인심 좋다는 소문만 듣고 시집보낸 집에는 정말 먹을 것 하나 없이 너무나 가난했고, 편찮으신 홀시아버지와 무뚝뚝한 신랑뿐 이었단다. 그야말로 얼굴도 한번 안보고 결혼하던 그 시절이었다. 무뚝뚝한 신랑은 말도 거의 없고 '정'도 별로 없어 어머닌 편찮으신 시아버지를 친구삼아 얘기도 하시고,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밤에는 베를 짜고 낮에는 밭에 나가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서 번듯한 논, 밭도 한 뙈기씩 사고 여섯 명의 자식들을 낳아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일궈내셨다.

자식들 모두 잘 키워 출가 시키고 이제 좀 편하게 살만하니 7년 전 아버지께서 뇌졸중과 치매로 쓰러지셔서 또 그 수발을 당신 혼자 떠안으며 고생을 하셨으며 아버지는 5년을 힘들게 사시다가 2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거구에 장신인 아버지를 왜소한 어머니가 보살피시기엔 얼마나 힘이 들지는 안봐도 알 일이다. 식사며 목욕이며 대소변이며 남의 도움 없이는 전혀 못하시고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았고 자식들이 돕기라도 하면, "이건 내 일이다. 나만 고생하면 되지 너거들까지 고생할 필요 뭐 있노"하시면서 끝까지 해내셨다.

아버지는 쓰러져 계시면서도 해마다 수술할일이 생겨서 수술하시고 또 한달정도는 통원치료를 일주일에 한번씩 받아야 했기에 우리 집에서 두달씩 해마다 계시곤 했는데 그때 만난 나의 어머닌 '감동' 그 자체였다.

어떤 아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녀가 따로 없었다.

아기를 다루듯 어르고 달래며 밥을 손수 못 드시는 아버지를 위해 생선을 발라 밥 위에 올리고 , 물을 떠와서 세수를 시키고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그 일을 5년 동안 혼자 해내신거다. 우리집에 계실 때도 내가 한 거라곤 고작 죽 쑤어 드리고, 목욕 도와 드리기, 가끔 짜증 내는 일. 그러면 엄마는 "그래, 니가 짜증 낼만도 하지. 미안타"하시며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목이 메어 뒤돌아서서 울기도 하고, 비가 억수같이 퍼 붙는 날 음식쓰레기 비우러 가면서 울기도 했다.

나는 겨우 두달 동안 우리 집에 계시는 아버지도 힘이 들어 요양원이나 노인병원에 모시자고 했다가 된통 혼났다. 잘하든 못하든 당신이 직접 하셔야지 마음이 놓인다고 하셨다.

나의 어머니. 지금은 일흔아홉의 허리는 구부정하시지만 너무나 총명하시고 마음도 건강하시다. 아직까지 간장 된장 고추장은 물론이고 김장까지 손수 하셔서 여섯 자식들 집으로 다 보내 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봄이면 쑥이며 달래, 냉이 다 캐 주시고 두릅이며 산나물까지….

또 집 앞 텃밭에다 상추, 고추, 파, 깻잎 다 해서 따주신다.

아무리 자식들에게 주는게 낙이라지만 허리와 무릎이 불편하심에도 자식들 챙겨주는 즐거움으로 사시고 좋은 음식은 당신혼자서는 아까워 못 드시고 자식들 오기를 주말마다 기다리신다. 같이 살자고 하면 "내가 아직 건강하고 움직일 수 있으니 무공해 채소도 해 주고, 니들 기다리는 재미도 있어야지 같이 살면 그 재미가 없잖아"하시며 한사코 뿌리치신다.

내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가 제일 마음에 걸리는지 약 지어 먹어 라고 내가 불편해 하는걸 알면서도 몰래 돈을 챙겨 주신다. 난 그런 엄마를 위해 이제까지 특별히 해 드린 게 하나도 없다, 고작 하루에 한번 전화하는 것, 한달에 한번정도 방문하는 것, 엄마가 애써 해놓은 무공해 야채, 맛있게 해 놓은 반찬이며 힘들게 가파른 산을 오르며 조금씩 모아둔 산나물들을 염치없이 트렁크 가득 채워 와서 먹는 것뿐이다.

딸들은 다 도둑이라는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나도 그런 나의 엄마를 위해 해드리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함께 여행도 하고 용돈도 많이 드리고 싶다. 하지만 늘 마음뿐이라 너무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둘 뿐인 우리 아이 챙기는 게 뭐가 그리 급급한지….

어버이날도 다되어 가는데 큰 맘 먹고 엄마 모시고 가까운데라도 한번 다녀와야겠다.

엄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너무너무 감사하고 사랑해요. 엄마!

김미숙 (대구시 수성구 신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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