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따라 부쩍 엄마가 그립다. 내 나이 56세. 울엄마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7남매를 낳아 키우신다고 고생만 하셨던 엄마. 그 흔적이 고스란히 얼굴에 남아 나이에 비해 주름이 쭈글쭈글하셨다.
내가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이제서야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깊은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나에게 엄마는 늘 야속한 존재였다.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어린 동생을 나에게 떠맡기셨다. 어린 동생을 안겨 주며 잘 돌보라는 말만 남기고 횡 하니 밭으로 가버리는 엄마. 한창 공부할 시기에 동생을 돌보라니 너무 속상했다. 또 늘 언니 옷을 입으라고 하시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시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딸이라서 차별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아시다시피 당시에는 남녀차별이 심했다.)
하지만 뒤늦게서야 엄마가 나를 무척이나 아끼신다는 것을 알게됐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데, 어릴 적에는 그저 남동생만 좋아하신다고 단정지었다.
억척스럽게만 느껴졌던 엄마는 내가 결혼할 당시 펑펑 우셨다. 품안에 있던 딸의 출가가 내내 섭섭하신 모양이었다.
결혼해 첫아이를 낳을 당시도 엄마는 미역을 사들고 먼길을 걸어오셨다. 그날 따라 엄마가 무척이나 야위어 보였는데, 몸이 안좋으신 거였다. 당신의 몸은 아프지만,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딸을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온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얼마 후 갑작스럽게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정말 하늘이 깜깜했다.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는데, 남아 있는 것은 엄마의 검은 핏자국뿐이었다.
살아계셨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왜 그리 아꼈는지 너무 후회가 된다.
얼마 안 있으면 엄마 생신이시다. 국화 한송이 찾아들고 찾아봬야 할 것 같다. "엄마는 이 세상에 없지만, 늘 내 맘속에 자리잡고 있어. 사랑해."
배옥희(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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