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박미석 전 수석을 위로함

입력 2008-05-01 11:03:13

가진 자는 마땅히 그 재산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펼치는 것이 옳다. 더구나 그 재산이 유형의 부가 아닌 지적 재주라면 毛遂(모수)처럼 자가발전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다. 전국시대 平原君(평원군)의 식객이었던 그는 스스로를 외교 사절로 천거해 나라를 구한다.

그러나 최근 사퇴한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의 경우는 달랐다. 업혀 와 난장 맞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비서관 내정자 발표 전날 '전격' 발탁됐다. 새 정부 출범 즈음 수많은 언론의 하마평에 한 번도 오르내린 적이 없었다. 모교인 숙명여대 가정'아동복지학부 교수였던 그는 2000년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02년에는 서울시장 인수위에서 활동했으며 2004년엔 서울복지재단 초대 대표이사로 인연을 이어왔다. 대통령과 같은 소망교회에 다녔고 그의 남편이 대통령 출신 대학 교수일 뿐이다. 그런 동안 아무 문제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정되면서부터 임용 때까지 성토와 사퇴 압박이 끊이지 않았다. 처음엔 교수로서 제자의 논문 표절 의혹에서다. 전공이 자리에 적격이 아니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러나 버티어냈다. 당시 박 수석보다 더 큰 의혹과 비난을 샀던 이춘호 여성부'남주홍 통일부'박은경 환경부장관 후보자가 사퇴한 덕(?)이다. 이들은 모두 부동산 투기 의혹과 자녀 이중국적, 도덕성 문제로 낙마했다. 그러나 박 씨에겐 두 달이 한계였다. 재산공개과정에서 불거진 땅 투기 의혹과 이를 해명한다는 것이 도덕성까지 의심받으면서 결정타를 맞은 셈이다.

흠결이 있다고 무조건 공무를 담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선비를 구함에 온전하기를 요구하지 마라." 전국시대 魯(노)나라 子思(자사)가 荀燮(순섭)을 衛侯(위후)에게 추천했을 때 "그는 남의 달걀 2개를 몰래 먹은 적이 있다"며 거절하자 자사가 한 말이다. 몇 아름이 될 재목을 한 마디 썩은 부위 때문에 버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것이다.

그렇다고 박 전 수석의 문제가 사퇴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학 교수와 청와대 수석의 사회적 정서적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명예와 부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다. 부의 축적이나 개인의 입신 과정에 대한 사회적 수용 한계가 있고 임계치를 넘어서면 집단적 알레르기 반응으로 표현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박 전 수석이 욕심을 자제하고 수석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은 것을 나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된다면 천거한 사람이 먼저 책임져야 할 것이며 알고도 썼다면 쓴 사람도 책임져야 할 일 아닌가. 기자의 시각으로는 그것이 각본 없는 정치 마당인 듯싶다. 삼국지에서 曹操(조조)는 수많은 위기를 모면한다. 그럴 때마다 목숨을 바쳐 주는 부하들이 있어 조조는 무사할 수 있었다. '죽어나는 것은 조조 군사'란 시쳇말이 생긴 연유다.

시대와 민심이 다르긴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도 총알받이는 필요했다. 더구나 부의 축적에서 원초적 부담을 안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전부 그런 사람들'이란 집단의 부정적 이미지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비서관 회의에서 "스스로 점검할 기회도 없이 (청와대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고 한 이 대통령의 질타는 꽤나 노골적이다.

뒤늦게 사표는 수리됐지만 아직 변수가 남아있긴 하다. 어쨌든 현 상황에서 박 전 수석은 자신이 몸을 던짐으로써 이동관 대변인이나 곽승준 외교안보수석이 무사할 수 있다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할 판이다.

그래도 억울하긴 할 것이다. 그보다 먼저 사퇴해야 할 사람들이 현 각료와 청와대에는 버젓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듯싶다. 그들에 대한 사회적 수용 기준? 그거야 그때그때 달라요.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