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금융공사 전세자금대출, 진짜 서민에겐 '그림의 떡'

입력 2008-05-01 09:00:40

기초생활보장제 수급권자인 배숙자(41·가명·여·대구 남구) 씨는 방 한칸을 마련하려다 최근 며칠간 겪은 일을 생각하면 분을 참을 수 없다. 국민주택기금을 재원으로 한 싼 이자의 '영세민 전세자금 대출' 제도를 이용,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대구시내 한 은행 지점을 찾아가 수차례 드나들며 보완서류를 내밀었는데도 불구, 결국 퇴짜를 맞은 것이다.

배씨는 "연리 2%짜리 전세자금이 있다는데 빌리고 싶다"고 말했다. 돌아온 은행원의 대답은 "재산세 5만원 이상을 내는 보증인을 내세우거나 주택금융공사가 발급하는 보증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는 것.

그는 어렵게 보증인을 구한 뒤 전세집 계약까지 마쳐 놓고 다시 이 은행을 찾았지만 은행원은 "안된다"라는 대답을 내놨다. 혼자 사는 사람은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5만원 이상 재산세를 내는 사람이라도 도시계획세 등을 제외환 '순수 재산세'가 5만원이 넘어야 한다며 배씨가 구해온 보증인도 자격 미달이라는 통보를 해왔다.

"5만원 이상 재산세를 내는 보증인을 세우면 된다고 해서 은행에 몇번이나 걸음을 했습니다. 결국 집까지 계약한 뒤 은행에 다시 찾아갔는데 '단독세대라서 안되고' '순수 재산세'를 들먹이고, 처음부터 저는 혼자 산다고, 기초생활수급권자라고 얘기했는데 찾아갈 때마다 말이 바뀌었습니다. 정말 어렵게 사는 사람은 설 곳이 없습니다."

이 은행 측은 업무 실수를 인정했다. 단독세대나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대출이 어려운데도 업무 미숙으로 처음부터 이같은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 측은 보다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영세민 전세자금 대출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지나치게 문턱이 높다는 것.

"단독세대가 늘고 있지만 단독세대는 안되고, 기초생활수급권자도 기초생활보장비를 소득으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대출이 어려운 구조를 안고 있습니다. 더욱이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이지만 보증인을 구해오거나 보증서도 발급받아야 합니다. 이런 구조로는 정말 전세자금을 구하기 힘든 사회적 소외계층이 이 자금을 이용하기가 힘이 듭니다"며 은행 측은 제도 개선부터 필요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이 자금 대출 업무를 관리하는 주택금융공사 대구경북본부 측은 "전세자금대출은 시혜적·복지차원의 정책이 아니다"며 "재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을 제한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최근 전세자금대출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지난달 대구경북지역에서 저리의 전세자금을 빌려간 사람은 690명, 124억원에 이르러 지난해 같은 시기(543명, 77억8천600만원)에 비해 금액 기준으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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