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밖에 내놓기 겁나요."
23일 오후 대구 달서구의 한 놀이터. 모래 장난하는 아이들 옆에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최근까지 잇달았던 유괴에다 이젠 성폭력 사태까지 불거지자 딸을 둔 엄마들은 "걱정이 태산 같다"고 했다. "학교도 믿을 수 없으니 앞으로 딸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에요."
초교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엄마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어린 학생이 가해자고, 또 피해자였다는 점에서 '내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
◆급증하는 아동 성폭력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는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대구에서 발생한 13세 미만 성 관련 범죄는 모두 60건. 지난해보다 10건, 2005년에 비해 27건이 더 늘었다. 올 들어서는 3월 말까지 23건이나 경찰에 신고됐다. 그러나 이 수치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2차 피해를 우려해 말 못하는 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005년 6월 문을 연 영남권 해바라기아동센터에는 지금까지 400여명의 성폭력 피해 아동들이 상담을 받거나 치료를 받았다. 올 들어서도 벌써 71명이 센터 문을 두드렸다.
대구경찰청 류경희 여성청소년계장은 "경찰에 접수되는 것은 피해자의 부모가 가해자를 처벌하기를 원할 경우에 한정되기 때문에 실제 성폭력 사건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추정하기 어렵다"며 "대부분 자녀가 겪을 정신적 충격 때문에 세상에 드러내기를 꺼린다"고 했다.
30일 초교생 집단성폭행 사건과 관련된 달서구 A초교는 수업이 적은 수요일이라 조용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소문을 알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멀리뛰기를 하고 있던 한 무리의 5학년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이들에게 '음란물을 접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하다가 "야동(야한 동영상) 본 적 있느냐?"고 바꿔 묻자 금세 알아들었다. 아이들은 "한 반에 1, 2명 정도는 본 걸로 안다"며 "선생님께 혼날 것이 두려워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안다"고 했다.
인터넷, 위성방송 등을 통한 아이들의 성지식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학교와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성지식 정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어설프게 친구나 인터넷을 통해 성지식을 잘못 습득하면 문제가 이어질 수 있다.
조윤숙 대구 여성의 전화 대표는 "음란물을 통해 아이들이 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됐을 때 성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성폭력 가해자들을 상담해보면 이들은 죄의식이 없으며 오히려 성폭행이 여자들을 기분좋게 만든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쉬쉬 덮을 일 아니다.
늘어가는 아동 성폭력에서 아이들을 보호할 순 없을까? 전문가들은 우선 게임이나 인터넷, 위성방송 등에 무작위로 노출된 음란물에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해바라기아동센터 채종민 운영위원장(경북대 교수)은 "6세 남자 아이가 5세 여자 아이를 성추행한 사례도 있다"며 "음란물을 보지 않았으면 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했다.
성범죄와 사고 예방을 위한 정기적이고 반복적인 교육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및 성폭력 예방과 치유를 위한 대구시민사회공동대책위는 "보수적인 성의식과 구태의연한 교육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아이들의 성교육을 교사에게만 맡기지 말고 전문적인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동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전문적 치료기관은 더욱 절실하다. 상담과 치료를 병행해주는 전문기관인 해바라기아동센터는 전국적으로 4곳에 불과하다. 대구에 있는 영남권센터가 경북 봉화에서부터 부산까지의 상담치료를 전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채 운영위원장은 "전국 40여개 의과대학에 아동 성폭력 전문 치료센터를 만들면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좀 더 세심한 치료가 이뤄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동 성폭력을 어른들이 외면해서도 안 되고, 자녀가 겪을 심적 고통을 우려해 피해 아동의 부모가 쉬쉬하고 덮을 일도 아니라는 점이다.
채 위원장은 "사소한 성추행 사건이라도 아이의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경우 곧바로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