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힘이다]사돈과 함께 살아요

입력 2008-05-01 07:02:46

4대가 함께 모인 김성배씨 가족. 왼쪽부터 임영희·김태임·추성무·김현주·김경숙·김대욱·김성배씨.
4대가 함께 모인 김성배씨 가족. 왼쪽부터 임영희·김태임·추성무·김현주·김경숙·김대욱·김성배씨.

"이젠 사돈이 아니라 친구 같아요. 여생을 함께 보내는 친구 말이죠."

김경숙(82)·김태임(81) 할머니는 사돈지간이다. 하지만 어렵기만 한 여느 사돈과는 다르다. 서로의 다리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귀가 돼주며 한 집에서 생활한지 1년5개월. 이젠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돼 버렸다.

김성배(59·대구 수성구 만촌동)·임영희(56)씨가 친정 어머니 김경숙 할머니를 모시기로 하면서 사돈의 한 방 생활이 시작됐다.

"양쪽 다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 혼자 생활하셨어요. 시어머니는 10년 쯤 전부터 함께 모시고 사는데, 늘 친정어머니가 마음에 걸렸죠."

이렇게 한 지붕 생활이 시작된 두 할머니. 아들·며느리·손자가 모두 출근하고 나면 덩그마니 혼자 남아있어야 했던 김태임 할머니에게 사돈은 반가운 말벗이 되어주었다. 다리가 불편해 거동이 힘들기 때문에 사돈의 존재가 더욱 고맙다. 김경숙 할머니에게도 마찬가지. 늘 적적하던 생활에 말이 통하는 친구가 생긴 것은 축복이다.

함께 이야기하고 웃지만 다툼은 생기기 마련. 하지만 오래 가진 않는다. 가족들은 이를 두고'사랑 싸움'이라고 말한다."우리가 생각해도 아이들 같죠, 뭐 별 거 아닌 일에 싸우곤 해요. 그래도 특별한 화해 없이도 어느 순간 같이 이야기해요."김경숙 할머니는 머쓱하게 웃는다.

소소한 다툼이 일어날 때면 김씨 부부의 처신이 더욱 중요해진다. 부부는'두 분의 일에는 절대 상관하지 말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자'는 원칙을 미리 정해뒀다. 한번 개입하기 시작하면 관계가 끝도 없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큰 문제는 없다. 오히려 가족이 더욱 화목해졌다. 마침 주말부부인 딸 현주(32)씨까지 아기를 데리고 친정나들이를 하는 날이 많아, 4대가 함께 생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할머니들은 6개월 된 증손자 성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할머니들은"성무가 뒤집어서 구르는거 봤어요?","어제 내가 틀니를 빼는 걸 성무가 봤는데 그 후론 나만 보면 울상이네. 무서웠나봐."라며 끊임없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현주씨도 아들을 아껴주는 가족들이 고맙다."요즘 4대가 함께 지내는 가족이 어디 있나요.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아기에게도 할머니가 많으니 정서적으로 좋은 것 같아 일부러 더 자주 친정에 와요."김씨의 아들 대욱(27)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보기 드문 화목한 가정'이라며 부러움을 산단다.

두 노인을 함께 모시면서 김씨 부부의 사소한 걱정거리도 사라졌다."노인이 혼자 집에 계시면 신경쓰이는 일이 많잖아요. 가스불은 껐는지, 식사는 챙겨 드셨는지.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지내시니 그런 걱정도 사라져 한결 편안해요."두 노인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부부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사실 임씨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게 돼 더욱 애틋하고 감사하다."친정어머니와 이렇게 함께 생활하는 건 결혼한 후 처음이에요. 그동안 잠깐 다녀가시기만 했지, 주무시고 가신 적도 없거든요. 너무 좋아요."흔쾌히 어려운 결정을 해준 남편에게 고마움이 더욱 크다. 부부 사이에 믿음도 더욱 깊어졌다.

김씨는 내친김에 오랫동안 품어온 소망 하나를 은근히 내비친다."여유가 좀 더 생기면 홀로 계신 어르신들 몇 분 더 모시고 사는 게 꿈이에요. 우리 어머니들 처럼요."

가족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두 분 모두 가시는 날 까지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금처럼만 살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두 분 다 건강하신 편이니, 이대로라면 백수도 가능할 것 같아요."

4대에 걸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해하는 김씨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 물어봤다.

"끈 같은 존재 아닐까요. 매듭이 지면 풀어야 하고 끊어지지 않도록 항상 서로 노력해야 하는 것, 그게 가족 아닐까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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