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사람의 향기

입력 2008-05-01 07:16:51

사람이 냄새를 맡는 것은 코 안쪽 끈끈한 점막에 덮여있는 수용체가 공기에 떠 있는 여러 화학물질에 접하면서 시작된다. 수용체들은 가는 신경 섬유 끝에 붙어 있는데 신경 섬유들은 앞머리뼈 밑에 뚫려 있는 수많은 작은 구멍들을 통해 머리뼈 안으로 들어온다. 이들은 냄새 맡는 신경의 부풀어지고 커진 부위로 모아졌다가 측두엽 내측에 있는 후엽(嗅葉)에 전달돼 냄새를 감지하고 느낀다. 복숭아 형태의 편도체(扁桃體; amygdala)와 그 주위 조직이 후엽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후엽은 다시 해마(海馬; hippocampus)나 시상하부(視床下部; hypothalmus)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맛에 대한 기억과 음식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냄새 맡는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은 일반인들에겐 사소하게 여겨질지 모르나 당사자들에겐 무척 괴로운 일이다. 음식의 맛을 잃어버리게 돼 여성의 경우 밥을 흔히 태우거나 반찬을 준비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것을 냄새라고 한다. 그러나 향기(香氣)는 꽃이나 향 따위에서 나는 기분 좋은 냄새만을 지칭한다. 나는 올해 4월 4, 5일자 조선일보에서 어느 할머니가 평생 모은 1억원을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어느 대학에 장학금으로 내어 놓았다는 기사와, 초등학교 1학년 때 척추결핵에 걸려 40년 동안 단칸방에서 엎드려 살아오면서 그린 카툰이 뉴욕의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사람에 대한 기사를 읽고 세상의 향내를 맡았다. 이 기사들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한사람, '빙점'을 쓴 작가 미우라아야코다의 삶을 떠올렸다. 나이 24세 때 약혼 사주가 오는 날, 그녀는 결핵으로 쓰러진다. 후에 척추결핵으로 발전돼 13년 동안 누워서 지내는 삶을 산다. 많은 아픔과 괴로움을 겪었으나 그 아픔과 괴로움을 영혼에 응고시켜 보관한다. 그 후에 사리같이 보관돼 있던 그 결정체를 하나씩 하나씩 녹이고 풀어내면서 글을 쓴다. '빙점'을 쓰고, 자서전적인 '길은 여기에'를 쓰고, 그리고 다른 많은 문학 작품들을 내어 놓는다.

아침 일찍 출근하려고 나설 때 순간적으로 콧속으로 '확~' 파고들던 향기를 맡았다. 옛날 무명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던 고향 누나의 몸에서 맡았던 향긋한 냄새와 닮은 목련 꽃 향기, 대학시절 어느 여인의 기다란 생머리에서 맡은 듯한 간호대학 뒷길에서 흘러드는 라일락 꽃향기, 그리고 지금은 떠나버린, 한때는 내 가슴을 아리게 했던 어느 여인의 몸에서 풍겨 나오던 향과 닮은 듯한 자주색 등나무 꽃송이에서 품어 나오는 향기···. 사람의 안을 채우고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인품이고 사람의 향이라고 하는데, 지금 내 몸에서는 어떤 향기가 나는 것일까? 꽃들에서 맡아지던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가 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남의 이맛살을 찡그리게 하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일까?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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