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소년 할람에게 봄날같은 연분홍 사랑이 지나간다
여기, 대학도 친구도 거부한 채 성인의 문턱에서 그 책임을 유예 받은 18살 청년이 있다. 등 뒤에 망원경을 숨기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힐끗 힐끗 훔쳐 보는 청년 할람 포. 어머니 자리를 대신 한 새 어머니가 질식할 듯 밉다가도 불현듯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싶다는 충동에 어찌할 바 모르는 젊은 사내. 청년은 어느 날 어머니와 꼭 닮은 여자를 만난다.
데이빗 맥킨지 감독의 '할람 포'는 고전적인 드라마이다. 수줍은 청년의 관음증, 새 어머니와 아버지 몰래 교감하는 성적 욕망, 스치는 여인의 손길에도 부르르 떠는 젊음의 관자놀이까지. '할람 포'는 고전 심리 드라마가 갖추어야 할 것은 죄다 갖추었다. '페드라'나 '싸이코'에서, 이미 고루 다루었던 고전적인 오이디푸스 드라마가 어찌하여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까지 탔단 말인가.
'영 아담'으로 데뷔했고, '어사일럼'으로 베를린에 초청된 데이빗 맥킨지는 특유의 시적인 이미지와 탄탄한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승부수를 던진다. 할람이 새 어머니의 목을 조르고, 새 어머니가 할람의 '그 곳'을 잡아 채고 싸우다 정신없이 서로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는 장면이나, 결국 그토록 미워하던 새 어머니를 물가로 끌고 가며 벌이는 애증의 불협화음은 데이빗 맥킨지가 영원한 프로이드의 팬이라는 것을 입증하고도 남을 만큼 관능적이다.
그런만큼 할람이 집을 나와 무작정 에든버러로 간 후 만난 여자 케이트가 어머니를 닮았다는 설정 역시 그냥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케이트는 할람의 상징적인 어머니요. 할람이 케이트를 훔쳐본다는 사실은 할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은밀한 시각적 퇴행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에 케이트는 할람이 자신을 훔쳐 본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유부남인 호텔 매니저 보다는 할람의 순수한 구애에 더 마음이 움직인다. 그리고는 서로의 은밀한 그곳을 지칭하는 말을 입 밖에 내 뱉으며 한발 한발 서로에게 다가간다.
가장 은밀한 부위, 차마 입밖으로 발화하지 못하는 자신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를 과감하게 발화하는 두 사람은, 이제 세상의 모든 관습을 거스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싸이코'의 살인마 노먼 베이츠와 달리, 할람은 자신을 분열시키는 파국을 넘어서 종국에는 성장의 길을 향해 나아간다. 노만 베이츠(싸이코의 주인공, 모텔을 운영했다)와는 동일한 호텔업에 종사하건만, 다행히 그는 어머니의 옷을 떨쳐 입고 손님에게 식칼을 휘두르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 공방이 스릴러의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할람 포'는 성장 드라마의 빛 속에 자신의 무게추를 더 얹는다.
특히 케이트와 행복한 첫 경험을 나눈 후 복도에 놓인 가방을 들고 팔짝 팔짝 뛰는 장면은 그 옛날 '에덴의 동쪽'의 제임스 딘이 콩밭에서 팔짝 팔짝 뛰던 장면에 버금가게 사랑스럽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 보인 제이미 벨이 다시 한번 상처 받은 18살 청년의 내면 지도를 강렬한 눈빛 연기로 펼쳐 내 보인다. 여기에 영국 최고의 인디 레이블(인디는 인디펜던트의 약자로, 소규모 기획사를 뜻함) 도미노 소속의 싱어들이 부르는 16곡의 주옥같은 노래들은, 할람의 내면을 대신하여 관객들에게 촉촉한 상실감과 부드러운 희망의 결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
대니 보일의 강렬함이 조금은 부담스러워졌을 때, 켄 로치의 숭고한 이상이 조금은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때, '할람 포'를 보자.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늘 육체의 교집합을 바탕으로 강렬한 도발을 일삼는, 조금은 진부한 데이빗 멕킨지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스코틀랜의 낮은 회색빛 하늘 아래 숨겨진, 감각의 제국 어느 언저리에서.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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