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 다문화 사회] 해외에서 배운다-(16)독일

입력 2008-05-01 07:50:47

지자체 평가, 이민자 정책에 가장 큰 점수

"소수민족한테 이렇게 잘해주시는 이유가 있나요?" 독일인에게 물었다.

"소수민족이니까요. 적을수록, 약할수록 안아줘야죠."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느냐'는 그의 표정에 기자는 얼굴을 붉혔다. 그는 "'빨주노초파남보'라는 무지개빛이 다르다고 차별해야하냐?"고 덧붙였다. 인종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소수인종의 삶은 공평했다. 차별은 없었다.

◆녹아 있는 하나의 문화=지난달 26일 오전 11시 독일 카이져스 라우테른시(市)의 카이져스 라우테른대학 중앙도서관. 러시아 유학생 알수 카티야투틴(22·여)씨가 건너편에 앉아있던 장이(23·중국)씨에게 '분자구조'에 대해 묻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곧 열띤 토론이 시작됐다. 웨이리우(21·중국)씨가 "제 생각엔 이렇게 풀어야할 것 같은데···"라며 토론에 끼어들자, 카트린(21·여·독일)씨가 "이 문제풀이에는 지름길이 있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같은 수업을 듣지만 서로 이름을 몰랐단다. 열기를 띠는 이 토론에는 피부색도 출신국가도 전혀 문제될게 없었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지츠만 화학과 교수는 취재진을 포함해 이들 학생을 자신의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저녁식사는 곧 파티가 됐다. 지츠만 교수의 이웃에 살고 있는 몇몇 다문화 가족들도 함께했다. 30년 전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온 뒤 독일인 남편을 만난 김화숙(61·여)·글렙쉬(59)씨 부부, 미군 남편을 두고 있는 국현숙(42·여)씨와 김명숙씨. 지츠만 부부의 세 아이들과 국씨의 두 남매까지 모였다.

국현숙씨는 "임신했을 때 남편이 김치담는 법을 배워 손수 담가줬다"며 "독일어는 남편과 이웃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거실은 다문화 가정을 꾸린 이들과 2세들로 북적였다. 즉석에서 아리랑 합창도 이뤄졌다. 음악전공인 지츠만 교수의 두 아들은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로 보조를 맞췄다. 김명숙씨는 "남편이 출장이 잦은 편인데 꼭 전화를 걸어 한국어로 통화한다"며 "한국 문화를 존중해준다"고 웃었다. 김제미씨는 "가족들이 '엄마의 나라'를 잘 이해해주고 궁금해한다. 다문화란 따로 없다. 어울리다보면 고향도, 피부색도 다 잊는다"고 말했다.

◆너와 나, 구분이 없다=독일은 외국인이 전체 주민(8천180명, 2005년 기준) 10%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내·외국인 구별이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내국인과 동등한 수준의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누린다. 사회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된다. 노동조합에 가입제한은 없다. 모든 점에서 내국인과 같은 대우다. 외국인 노동자만을 위한 직업훈련체계도 잘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독일정부가 1년에 한번씩 주관하는 각 지자체 역량평가 목록 중에서도 '이민자 정책 분야'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다. 당연히 지자체는 이 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고 노력한다.

실제 몇 해 전 독일 지자체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의 수도 스투트가르트시(市)는 이주민 정책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자동차산업도시로 세계적 명성을 날리는 것도 외국인을 품고 있기 때문.

하지만 독일 역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 청소년들의 실업률이 높다. 하지만 프랑스 소요 사태와 같은 사회적 불안요소를 방지하기 위해 이들을 대상으로 상담 및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병행된다. 학교마다 이민자 2세들을 위한 입학자리가 필수적으로 남아있는 것도 배려의 한 부분이다. 별도 교과과정, 방과후 학교 등 학교 생활 전반에 걸쳐 혜택이 주어진다.

라우테른 대학 지츠만 교수는 "독일의 각 학교에서도 '방과후 학교'가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이민자 2세들이 부모님의 나라에 대한 정체성을 잃지않도록 예산을 들여 그 나라의 말, 문화 등을 배울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얘기가 적용되지 않았다.

독일 카이져스 라우테른에서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사진=독일 카이져스 라우테른에서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법보다 인권"…호텔같은 밀입국자 수용소

"수용소입니까? 호텔 아닙니까?"

지난달 26일 오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내 외국인 수용소. 쇠창살은 없었다. 배낭여행족들이 즐겨 찾는 유스호스텔 수준이었다. 텔레비전, 컴퓨터, 탁구대가 갖춰진 휴게실에서 불법 밀입국자로 수용된 이들은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종교에 따라 기도실도 따로 마련됐다. 남녀가 따로 쓰는 방에는 침대, 옷장, 책상이 있었다. 가족이 수용되는 경우를 대비해 오가기 쉽도록 벽을 뚫어 중간문을 만들었다. 여성 밀입국자를 위한 영화감상실, 아이들 놀이방, 세탁실까지 마련됐다. 수용생활에 불편함은 없어보였다.

직원 히파크(34)씨는 "비록 불법 밀입국자들이지만 똑같은 사람인데 차별할 이유가 없고 차별받아서도 안 된다"며 "이곳에 머물다 가는 손님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죄인 취급은 하지 않는다. 밖에 나가지만 못할 뿐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다. 특히 수용소 중앙에는 안락한 공원까지 조성돼 있다. 의자에 앉아서 서로 담소를 나누는 밀입국자에게선 아늑함마저 느껴졌다. 밀입국자들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수용소의 설립 취지가 고스란히 보전되고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아직까지 이곳에서 탈출을 시도한 불법 밀입국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임상준기자

♠ "이민자, 고국문화에 당당해져야" 재일민간協 김미경씨

"당신의 문화를 결코 잃어서는 안됩니다."

지난달 22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만난 재일동포 민간협의회 김미경(42·여)사무국장. "약소국에서 왔다고 주눅들 필요도, 죄스러움도 느껴서는 안됩니다. 당당하게 자기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때 타향, 타국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김 사무국장은 일본인 남편이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는 언제나 자녀들과 한국어를 쓰고 한국음식을 만들고 있다.

김 국장은 또 최근 이주여성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남편의 폭력과 가족 갈등을 이기지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데 언성을 높였다. "60, 70년대 한국사람도 잘 살고 싶어 일본으로 건너왔습니다. 일본인들은 '마늘냄새가 심하다'며 한국인들을 내쫓았고, 음식점에는 '개와 조선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까지 내걸었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 어디에서도 인종 차별은 찾아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 국장은 "일본의 다문화·인종 포용정책과 시민들의 의식·문화 수준이 높아진 요인도 있겠지만 한국인들이 끊임없이 한국문화를 널리 알린 것이 차별을 없앤 요인"이라며 "한류도 그냥 만들어진게 아니다"고 말했다.

"자기 나라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매사에 당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자기나라 말을 못쓰게 한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가 없어요. 기죽는 순간 자녀들에게는 이중, 삼중의 고통이 대물림됩니다."

임상준기자

♠ "내국인, 타국문화에 열린 자세를" 佛 이민자자문위 퀘젤씨

"이민자들을 진정한 국민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달 25일 만난 프랑스 국무총리 산하 '이민자 정책 자문 위원회' 블론디 퀘젤(47·여) 소장은 이민자에 대한 '열린 마음'를 강조했다.

경제적 지원책만으로 물리적 국경선은 넘을 수 있지만 마음의 장벽을 허물 수는 없다고 했다.

"상대방의 문화를 알고 배우려는 평등 접근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는 퀘젤 소장은 "문화엔 좋고 나쁨이 없기 때문에 타국의 문화를 먼저 이해할 때 편견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무조건적인 '동화 정책은 금물'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어 그는 이민자 2세들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2세들은 엄연히 자국민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도 자칫 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어요.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사회 '주변인'으로 맴돌다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프랑스 소요사태에서도 보듯 자명한 일입니다."

그는 이민자 2세들에 대한 질 높은 교육을 강조했다.

"이민자 2세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중요한 인적자원이에요. 어릴 때부터 잘 교육시켜 미래에 활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퀘젤 소장은 두가지를 당부했다. 전 세계의 흐름인 이민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다문화 정책을 펼 때 인권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국경이 사라진 지금 '너와 나'가 구분될 수가 없어요. 다양한 문화가 잘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내기 위해 시민과 당국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임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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