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대학병원 의사의 둘째 토끼

입력 2008-04-24 07:00:00

의창(醫窓)을 통해 대학병원이란 곳을 계속 들여다보자. 꽁꽁 얼어붙었던 겨울이 지나고 요즘 같이 꽃 피는 봄이 오면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주로 봄과 가을에 열리는 학술대회 때문인데 그동안 준비하고 연구했던 결과들을 발표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것이 바로 앞서 소개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좇아야 하는 세 마리 토끼 중 두 번째, 즉 '연구'에 해당된다.

그런데 나름대로는 애를 써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했더라도 발표는 휘발성이 강하다. 즉 조금만 지나면 쉽게 잊혀 질 수 있는데 소위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하려면 논문으로 학회지에 출판해야 한다. 발표한 연구들을 다듬어 논문으로 출판해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에 시달리면서도 첫째 토끼(교육)와 셋째 토끼(진료)는 여전히 좇아야만 한다. 이미 소개한바 있는 교육담당 임상강사는 끊임없이 다음 학생교육 일정을 알려 준다. 거기에다 교육일정을 설계하고 실습시험을 관장하는 동료 교수들은 자신들의 훨씬 힘든 '교육'에 대한 역할은 왜 같이 소개하지 않았느냐고 섭섭해 한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려 깊은 사과로 위로를 대신하고 싶다. 그리고 수술실과 병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끊임없이 수술을 해도 수술대기 리스트가 조금만 길어지면 환자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전화통은 불이 난다.

더구나 두 번째 토끼를 좇는 일은 이렇게 자기 연구만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연관된 여러 학회마다 있는 수많은 위원회도 수시로 불려다녀야 하고, 학회지 논문의 심사와 편집, 교과서의 공동 저술과 편집도 모두 연구에 해당이 된다. 소위 학술연구를 위한 단체에서 봉사활동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틈틈이 다시 자기 논문을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무더위가 지나고 가을 학술대회가 성큼 다가온다. 이때가 바로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이란 속담이 뼈에 사무치는 시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걱정은 훨씬 일찍 시작된다. 보통은 발표를 끝내고 돌아설 때 벌써 '다음 연구는 무엇을 하나'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학문과 연구에 천부적인 재능과 취미를 가지고, 논문의 저술이 일생의 가장 큰 즐거움인 분들에게는 전혀 해당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되겠다. 어디까지나 나의 이야기일 뿐이며 이렇듯 두 번째 토끼도 절대 쉽게 잡히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학술대회'를 가면 낮에는 '학(學)'을 발표하고 밤에는 '술(酒)'로 시름을 잊어야 한다.

정호영(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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