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에게 외국인은 모두 부자
8개월간의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온 어느 날, 이미 일상의 건조한 먼지에 목이 막힐 것 같던 퇴근길에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황토색의 편지봉투는 지구 저편의 바다를 한참이나 건너온 듯 귀퉁이가 낡아있었다.
"Hello! Mino! How are you?" 정성들여 쓴 필기체에서 싱싱한 열대의 바람 냄새가 났다.
기억하니? 난 자크야….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대도시 다르에스살람에서 낡은 증기기관차를 타고 2박3일을 달려서 도착했던 마을, 키고마. 이웃나라의 전쟁난민들이 난민촌을 이루며 살고 있고,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 도로에 'UN'이라는 시커먼 글씨가 박힌 하얀 지프차들이 다니던 그 곳에서 커다란 눈의 자크를 만났다. 그는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다섯 살밖에 안된 어린 동생을 이웃집 아줌마에게 맡긴 채 돈을 벌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자크는 17살 밖에 안된 소년이었고 여권도 비자도 없었기 때문에 한밤에 작은 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모험을 감행했다.
"국경을 건너겠다고? 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너 이웃나라 부룬디로 가겠다는 내 말에 자크는 펄쩍 뛰었다.
"보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니? 국경을 넘겠다고 몰려드는 사람들은 넘쳐나고, 보트는 몇 대 안 되고…, 그래서 정원을 초과한 보트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아프리카 우기의 험한 날씨를 뚫고 위태롭게 국경을 넘는 거야. 일주일에 한 번씩은 보트가 뒤집혀 사고가 났다는 소문이 들려. 그런 보트를 타겠다는 거니?"
그런 보트를 타고 온 장본인이 그였다. 말을 하는 동안 그의 눈이 잊을 수 없는 기억의 저편을 향해 불안하게 흔들렸다. 5년 전에 두고 온 동생을 그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가끔 동생을 맡아준 아줌마로부터 안부편지가 온다고 했다. "돈을 벌면 동생을 데리러 갈테야"라고 자크는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이웃나라 탄자니아에서 5년을 일하고도 그는 자기가 살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고 일터에서 먹고 자는 형편이었다.
나는 부룬디영사관을 찾아가 국경을 넘는 안전한 방법을 알아냈다. 그 안전한 육로란, 새벽 일찍 국경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걸어서 국경을 넘어, 자전거택시(아프리카엔 자전거 택시가 있다)와 합승택시(여럿이 함께 흥정해서 타는 택시)를 갈아타며 탄자니아와 부룬디 사이의 험준한 산맥을 넘는 것. 국경을 넘기 전날 함께 버스시간을 알아봐주고 버스가 출발하는 정거장을 물색해준 자크는 영 걱정이 되는지 아침 일찍 나를 찾아왔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자크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나는 꼭 부자가 될 거야. 동생도 만나고 너처럼 여행도 하고. 언젠가는 내가 한국으로 여행 갈게."
자크의 편지는 오랜만에 나를 아프리카 대륙을 헤매이던 설레임과 흥분 속으로 데려다주었다. 동생을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 나같은 동양인 여행자를 가끔 만난다는 이야기들이 내 가슴을 잔잔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쓰여있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해. 네가 내 친구라면 100만원만 보내줄 수 있겠니?"
물론 100만원을 보내줄 수 없었다. 자크는 나 역시 한국에서는 100만원에 쩔쩔매며 힘겹게 일상을 살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프리카인에게 외국인은 모두 부자이고, 부자가 가난한 친구를 도우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인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내가 당연히 네게 베풀어야지'라는 마음으로만 가능한 것일까. 내 것과 네 것에 분명한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배려하며 적절한 관계맺기를 하고 살아온 나에게 '아프리카인 친구'는 어려운 숙제이다. 여행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여행은 끝난 것이 아니다. 여행에서 길어올린 이야기와 새로운 상상력이 매일 일상의 내면을 들석이게 하고, 여행이 만들어준 새로운 관계들이 내 일상의 숙제가 된다. 먼 바다를 건너온 편지는 여행의 숙제를 다 풀고 치뤄야 하는 시험문제 같았다.
얼마 후 나는 아프리카에서 온 또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짐바브웨의 어느 시골길에서 함께 버스를 기다리다 만난 가족이었다. 그 시골길 위에서 '평생 가족사진 한 장을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다'는 말에 짠해졌던 나는 사진을 찍어 현상까지 해서 보내주었다. 역시 'Hello! How are you?'로 시작된 그 편지는 이런 말로 끝났다.
"보내 준 사진 고맙게 잘 받았어. 그런데…, 비디오플레이어도 하나 보내줄 수 있겠니? 그렇게 해준다면 정말 고맙게 잘 받을게."
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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