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적과의 동침

입력 2008-04-22 07:00:00

지난 3일 영남대 지능형무인자동차사업단과 계명대 지능형자동차사업단(IVT사업단)은'적(敵)과의 동침'을 시작했다. 두 사업단은 지능형자동차 개발을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지금까지 지능형(무인) 자동차 개발은 대구는 계명대 중심으로, 경북은 영남대 중심으로 별도로 추진하며 경쟁을 해온 점에 비추어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다.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을 목표로 두 사업단은 공동연구는 물론 부품산업체 기술개발 및 지원, 교수·학생 교류, 시설·장비 공동 활용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계명대는 차량설계·차량제어 등 차량 하드웨어 부문에, 영남대는 센서·통신 등 전자분야를 맡아 각각 강점이 있는 분야를 특화해 협력기로 했다.

두 대학의 협력은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지능형 자동차 개발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대구경북이 광역경제권 형성에 맞춰 R&D 분야에서 협력하는 첫 사례다.

정부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R&D 분야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구조조정과 '지방앞으로'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10개가 넘는 전국 로봇관련 국책연구소와 일반 연구기관들은 조만간 서울에서 정책협의를 갖고 기관별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일부 기관은 로봇 연구에서 손을 뗄 것으로 알려졌다.

또 거대 국책연구소들의 지방공략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조만간 대구에 분원을 둘 예정이다. 경북에서는 부품소재분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자부품연구원(KETI) 연구센터 유치를 고려하고 있다. 이들 연구소는 1천명에서 2천여명의 연구원을 보유한'R&D 공룡'이다.

이런 R&D 기관들의 지방진출은 기업들에게 일정부분 도움이 되겠지만 무턱대고 환영할 일만도 아니라는데 지역의 고민이 있다. 대구 최대의 R&D 기관인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만 해도 연구원이 100명 남짓하고 설립 5년째를 맞았지만 특정연구분야에서 확실한 정체성과 연구실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책연구소가 지역 기관들이 하고 있는 분야에 연구개발을 집중할 경우 지역 기관들은 착근도 하기전에 입지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역 연구개발(R&D) 기관들은 수요자인 기업이나 대구경북 전체의 산업구도는 안중에 두지 않고 자기기관의 살길만 챙겨왔다. '우후죽순'에 다름없었다. 그 결과 '중복투자'는 물론 연구결과가 기술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한 채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점철돼 온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역 연구기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적과의 동침'이 하나의 자구책이 될 수 있다. 포항지능로봇연구소와 DGIST가 경쟁하는 로봇 분야의 경우 각각 지능형로봇과 안전·방재중심으로 특화하면서 협력하기로 한 것도 영남대와 계명대의 협력처럼 서로 윈-윈 하기 위한 좋은 사례다. 지역 R&D 기반이 무너지면 자금의 역외 유출이나 기업·인재유출보다 더 무서운 결과로 이어진다. 대구경북 경제기반의 붕괴는 막아야 한다. R&D 기관이 앞서서 냉정하고 현명한 선택으로….

이춘수기자(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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