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관의 시와 함께]시치미떼기/최승호

입력 2008-04-22 07:00:00

물끄러미 철쭉꽃을 보고 있는데

뚱뚱한 노파가 철쭉꽃을 꺾어 간다

그리고 내뱉는 가래침

가래침이 보도블록과 지하철역 계단, 심지어 육교 위에도 붙어 있을 때

나는 주의 깊은 보행자가 된다

어떻게 이 가래침들을 피해 길을 가고

어떻게 이 분실된 가래침들을 주인에게 돌려줄 것인가

어제는 눈앞에서 똥 누는 고양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끝까지 똥 누는 걸 보고

이제는 고양이까지 나를 바보멍청이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수줍음은 사라졌다 뻔뻔스러움이

비닐과 가래침과 더불어 도처에서 번들거린다

그러나 장엄한 우주를 이루어놓고도

조물주는 창조의 수줍음으로 숨어 있느니

그 분마저 뻔뻔스러워지면

온 우주가 한 덩어리 가래침이다

오늘 나는 거리에서 세 번 가래침을 뱉었다. 쥐똥나무 뒤편에 한 번, 전봇대 뒤편에 한 번, 한 번은 하수구 구멍에 맞추려고 했으나 빗나가버렸다. 일주일째 감기 중이다. 몸이 불편하니 수치심도 줄어든다. 몸의 균형이 어긋나면 정신이 감기에 걸린다. 아니, 정신이 뚱뚱해져서 몸에 감기가 드는 걸까?

며칠 전 욕탕에서 어깨 구부정한 야윈 노인이 수건으로 그곳을 가리며 들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어릴 때 자주 보던 풍경이다. '위대한 수줍음'은 이제 사라졌다. 속옷을 겉옷 위에 걸쳐 입고 활보해도 쳐다볼 사람이 없다. "뻔뻔스러움이 비닐과 가래침과 더불어 도처에 번들"거리는 이 시대. 보름달만 저 혼자 수줍게 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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