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ㄱ재벌 사모님과 ㄷ구청장

입력 2008-04-21 11:11:45

어제(20일)는 장애인의 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무슨 날' 하면 그날 하루는 요란스러울 만큼 갖가지 이벤트와 행사들이 열리고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정성이 그날의 주인공에게 쏠린다. 그리고 그날이 지나면 다시 그다음 또 다른 날을 준비하느라 어제의 그날은 잊어버린다. 지난 그날의 주인공은 어느새 잊혀 幕(막) 뒤로 사라지고.

다시 한 해를 기다려 그날이 돌아와야 모두들 챙기고 쳐다봐 준다. 그래서 무슨 날들은 허울뿐인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나 할까. 하루라도 공동체가 다 함께 하나의 이슈와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사람이나 일에 관심과 사랑을 쏟아보는 일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장애인의 날을 보내며 문득 'ㄱ보일러' 회장 사모님과 'ㄷ구청' 구청장님을 비교해 보게 된다. 'ㄱ보일러' 그룹은 지역에서 가장 현금 보유고가 많고 은행부채가 전혀 없다는 건실한 재벌그룹이다. 에너지뿐 아니라 레포츠산업, 미디어 쪽으로도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런 재벌그룹 회장 사모님쯤 되면 솔직히 아쉬울 게 없는 처지다. 그런데도 매주 한두 번은 밴 화물차를 몰고 나간다. 재벌 회장 부인이 넓고 쾌적한 부자동네 길로 다니지 달동네 골목길엔 왜 가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사연은 회장 부인이 직접 집에서 지은 밥과 반찬을 싸들고 달동네 홀몸 노인이나 장애인 집을 찾아 한나절내 밥도 먹여주고 수발을 들어주러 가기 때문이다. 차가 못 들어가는 좁은 길은 걸어서 올라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두 해도 아니고 십수 년째 변함없이 골목길을 다니며 나눔을 실천한다. 장애인이나 노인들 목욕시켜 드리는 봉사도 한다. 자신뿐 아니라 계열회사 임직원 부인들에게도 봉사활동을 권유하고 傳播(전파)한다.

봉사활동 전파를 위해 1년 동안 장애인복지시설 등에서 봉사한 실적을 기준으로 열심히 봉사한 직원 부인들을 모아 해외 연수 겸 격려여행을 시켜주기도 한다.

물론 전액 회장 부인의 개인 부담이다.

특별히 봉사실적이 많았던 사람에게는 연수여행 때 격려 상금까지 준다.

계열사 부인들로서는 달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회장 사모님의 率先(솔선)과 配慮(배려)가 '사모님 따라하기'가 아닌 나누며 사는 삶의 멘토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ㄷ구청장의 경우를 보자.

장애인의 날 ㄷ구청 관내 모 장애인 복지시설 원장은 내빈들에게 고충을 털어놨다. 10년 넘게 낡은 건물을 헐고 장애아이들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 활동을 위해 좀 더 큰 새 건물을 짓고 싶은데 구청에서 허락을 안 한다는 호소였다. 구청이 돈을 대 주는 것도 아니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시청이 5억 원을 지원하고 원장 개인 돈 1억5천만 원을 보태 새 건물을 짓겠다는데 길이 좁다며 허가를 안 해준다는 것이다. 규정이 애매하잖느냐는 주장에 구청 측은 국토해양부에 질의해 보라며 팔짱 끼고 있다는 거다. 그런 민원이 있으면 질의는 구청이 해줘야 事理(사리)에 맞다. 전봇대를 민원인더러 답답하면 네 손으로 뽑아내라는 격이다. 구청장님은 산속에는 수익이 남는 호텔 같은 게 들어와야지 복지시설은 들어와서 안 된다고 했다지만 그 복지시설은 이미 10여 년 전에 산속에 들어왔고 100여 명 장애인들에다 복지사만 5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복지고용 측면에서 구청에 수입이 되는 모텔 등이 들어오는 것보다 수십 배 더 고용효과가 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이 산속에 들어오면 구청 수익이 없다는 철학과 마인드는 복지 행정에 걸맞지 않다. 애매하다는 규정에 매여 안 되는 쪽으로 전봇대를 박기보다 100여 명의 장애어린이들에게 넓고 더 깨끗한 집을 선물해 주자는 사랑을 갖는다면, ㄱ재벌 사모님처럼 ㄷ구청장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시지 않을까. 장애인의 날을 보내며 가슴 따뜻한 행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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