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잠수종과 나비

입력 2008-04-19 07:03:51

몇달 전 '잠수종과 나비'란 영화가 개봉됐다.

화가 출신인 감독 줄리앙 슈나벨이 연출한 작품이다. 그는 27세에 요절한 미국 흑인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의 삶을 그린 '바스키아'(1996년)와 쿠바의 시인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일대기를 그린 '비포 나잇 폴스'(2000년)로 유명한 감독이다. 자유를 갈구하지만, 결국 함몰되고 마는 인간을 통해 삶의 의지를 건져올리는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

'잠수종과 나비' 또한 절망에서 휴머니즘 짙은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돈도 있고, 명예도 있다. 사랑과 우정까지, 누구 하나 부러울 것 없던 한 남자가 하루아침에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왼쪽 눈꺼풀 하나뿐. 알파벳을 하나씩 읊으면 해당 알파벳에 눈을 깜박여 겨우 소통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소설을 쓴다. 무려 1년 3개월 동안 20만번 이상 눈을 깜박여 탄생시킨 소설이 '잠수종과 나비'다.

잠수종은 물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종모양의 잠수모다. 몸은 엄청난 수압을 견디며 종 안에서 갇혀 있어야 하지만 영혼은 나비처럼 자유로이 날아다닌다는 것을 은유한 제목이다.

'잠수종과 나비'는 프랑스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자전적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온몸이 마비되는 '로크드 인 신드롬'(locked in syndrome)에 걸렸다. 로또 1등 당첨 확률보다 더 적은 희귀병이다.

20여일간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지만 그는 절망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멀쩡한 사람이 포박당해 꼼짝달싹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의식이라도 없으면 좋으련만, 의식은 더욱 또렷하다.

인간은 위대하다고 한다. '샤인' '나의 왼발' '뷰티풀 마인드' 등 장애를 인간승리로 이끈 위대한 실화를 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특히 '잠수종과 나비'의 보비는 글을 쓰는 데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고작 한쪽 눈꺼풀만 깜박여 알파벳을 지정하고, 그것이 단어가 되고, 그것이 다시 모여 소설이 된다는 것, 얼마나 위대한 인간의 의지인가.

그러나 더 위대한 것은 그가 남긴 말이다.

처음 의식에서 깨어나 "죽고 싶다"던 보비는 마지막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절망의 끝, 한가닥 생명줄에 목숨을 의지하며 그것도 하데스의 가위질에 언제 끊길지 모를 상황에 그는 삶의 아름다움과 행복, 희망과 소통을 얘기한 것이다.

절망에서 세상을 끌어안은 것 그것이 감동이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 그래도 고맙다는 것··· .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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