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평양 연락사무소 제안 배경과 의미는?

입력 2008-04-18 09:41:35

이명박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서울과 평양에 상설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고 제안한 것은 특사 등 비선(秘線)이나 한시적 대화 기구로는 남북 문제를 푸는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그간 북핵문제 해결과 북한 주민의 실질적 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북한과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밝혀 왔고 이번 제안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왔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남북 간에는 그간 여러 가지 대화 기구가 있었으나 국내의 정치적 상황이나 외생적인 변수 때문에 중단됐다가 재개되는 등 흔들려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게 청와대의 진단이다.

남북연락사무소 설치는 1990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겨 있는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장소가 판문점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남북은 그간 이에 대해 전혀 논의하지 않았고 특히 공식적인 제안조차 없었다.

때문에 이 대통령의 이날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일 경우 남북 관계 개선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제안에 앞서 참모들과 여러 차례 논의하는 등 오랫동안 구상해 왔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후 근본적인 남북관계 개선 방안을 모색해 왔으며, 참모들과도 이 문제를 숙의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에 있어 기존의 전략적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진정성을 갖고 대화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심혈을 기울여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없으며, 새 시대에 맞는 남북관계도 구축할 수 없다는 게 이 대통령의 확고한 소신이라는 얘기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번 제안은 남북간 대화도 전략적이 아니라 진정성을 바탕으로 내실 있고 실질적 진전이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그간의 원칙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민족의 미래에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지를 논의하자'는 채널로 연락사무소를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19일 밤 개최될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제안을 설명하고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북한이 이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여부다. 이 대변인은 "북한이 어떤 경우든 긍정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낙관했다. 진정성을 갖고 대화를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건설적 제안을 북측이 거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남북 상황 등 종합적으로 보면 북한이 이 대통령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란 게 북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새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북한은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군사 공격 발언 등 이른바 대남 협박 언동이 새 정부를 파악하기 위한 테스트 차원만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당장 이 대통령의 이날 워싱턴포스트지와 인터뷰에 대해서도 북한은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북한은 늘상 남북 관계를 대외 관계보다 우선 순위에 두고 있어 "과거 10년간의 정권이 남북관계를 6자회담을 통한 핵 문제 해결보다 우선시했다"는 이 대통령의 부정적 인식을 환영할 리 없다.

더욱이 북한에 어떤 제안을 할 경우 사전 물밑 접촉을 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이번에는 사전 교감을 위한 어떤 접촉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북한의 수용을 낙관하기 힘들다.

다만 이 대통령이 "식량 지원은 인도적 문제로 본격적 경제 협력과 별개"라며 대북 식량 지원 의사를 분명히 한 점에 대해서는 북한도 반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식량난은 심각한 수준으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시작해야 할 정도로 다급하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한편 이 대통령의 이번 제안이 북핵 문제 타결 이후의 한반도 정세까지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서 양국이 북핵 신고에 관해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4개월째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가 타결의 실마리를 찾고, 북미 관계가 급속히 개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칫 한국만 소외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어 미리 대책을 세우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얘기다.

실제 북한은 최근 대남공세를 강화하면서도 미국과의 대화에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구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북한이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 직거래한다는 전략은 성공할 수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해 왔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북한이 긍정적 답변을 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 대변인은 "우선 중요한 것은 북측이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이라면서 "북한이 이 같은 건설적인 제안을 거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출국 전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한반도의 참된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힘써보자고 말하고 싶다"면서 "김 위원장은 이런 발전적 관계 형성을 위해 매우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며 기대감을 표시한 바 있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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