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었다면 91살…가슴이 짠해요"
박 전 대통령 생가는 1993년 경북도 기념물 86호로 지정됐으며, 사랑채·분향소·관리사·주차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00년 즈음 지어진 이 집에서 1917년 태어나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오전 9시~오후 5시30분 개방되는 생가에는 박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 사용하던 책상·책꽂이·호롱불 등이 남아있고 1929년에 모친과 같이 심었다는 감나무가 버티고 서있다. 장조카인 박재홍씨 소유였던 생가는 소유권이 1996년 박정희 대통령 생가보존회로 이전된 뒤 2003년 2월 구미시 소유가 됐다. 김 전 보존회장 피살 이후 새로운 보존회장 추대를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찾을까? 구미 인구 40만명. 박정희 생가 1년 방문객 수는 이를 훨씬 넘어선 50만명에 이른다. 지금도 하루평균 1천300여명이 생가를 찾아온다. 이미 30년 전 세상을 떠난 대통령의 생가에서 과연 어떤 이들이 무엇을 찾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18대 총선 하루 전날인 8일, 박정희 생가를 찾았다.
김재학 박정희생가보존회장 피살사건이 있은 후 보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였다.
안동에서 15명의 동네친구들과 함께 생가를 찾았다는 강우중(78)씨는 생가 앞 표지판을 꼼꼼히 읽어보며 친구들과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박 대통령을 많이 존경했었지요. 살아계셨다면 91세 이시겠네요."
강씨 할아버지 일행과 생가에 들어섰다. 대구에서 온 김지영(55)씨는 오랫동안 오고 싶었던 곳이라며 감개무량해했다. "육 여사, 박 대통령 서거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짠해요. 아직도 살아계신 것 같이 생생한데….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된 것은 박 대통령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어요?" 김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추모관에서 나왔다. 50대 이후의 방문객들은 저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추억을 나누면서'보릿고개를 해결한 사람'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면 젊은층의 생각은 어떨까. 아버지와 함께 울산에서 왔다는 엄대석(34)씨는 정치인들에게 박통의 후광보다 실질적인 정치능력을 주문했다. "카리스마, 추진능력 측면에서 대통령으로서 대단한 인물이죠. 어른들에겐 '왕'의 개념인 것 같아요. 박근혜씨도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 박정희 대통령의 큰 딸 이미지가 강하죠. 선거 때마다 박 대통령의 후광을 입으려는 정치인들이 많은데, 그건 별개 아닌가요? 정치 능력을 살펴봐야죠."
방명록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더 사셨으면 세계 1위 국가','00후보에게 영광을 주십시오', '생애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민족의 영웅이시여', '그립습니다', '민족의 주린 배를 채워 주신 님이여' 등 존경어린 문구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주소도 각양각색. 그날 하루만 해도 전남 완도를 비롯해 서울·부산·울산·대전·안양·김제 등 전국 각지로 표시돼 있었다.
최근 보존회장 피살사건 이후 방문객이 더 늘어났다. 최미숙 문화해설사는 "400~500명은 기본이고 많을 때는 1천명 이상이 다녀간다"고 전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는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졌다고. 최씨는 "경제가 어려우니 박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더 짙어지는 것 같다. 박근혜에 대한 동경도 결국 박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게 아니겠느냐"는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정치인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대선 때는 이명박'이회창 후보가 생가를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도 생가는 문전성시였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에 탈락한 친박 의원들이 수시로 생가를 찾았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생가 방문 때는 1천여명의 지지자들이 몰리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정치 역정의 주요 고비 때마다 아버지 생가를 찾아 마음을 가다듬곤 한다.
박정히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구미을에서는 친박무소속연대 김태환 의원이 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되기도 했다.
이날 한 시간에 걸쳐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이들은 진지하고 경건한 표정으로 생가를 둘러봤고 50대 이상이 대부분이었다. 관광버스를 이용해 단체로 오는 경우도 많았다. 정기를 받기 위해 박 전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박혀있는 휴대폰 액세서리를 구입해 가는 사람도 종종 눈에 띄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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