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아파트 미분양 , IMF때 보다 더 심하다

입력 2008-04-15 09:41:33

'미분양은 눈덩이처럼 쌓이는데 해결책이 없다.'

대구 지역 미분양 아파트가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인 1만6천가구를 넘어섰다.

지난해 여름 이후 1만2천가구를 넘나들던 가구수가 1월 말 1만3천가구에서 지난 2월 1만6천가구로 한 달 사이 2천500가구로 늘어난 것. 연간 대구 지역 내 평균 아파트 분양 물량이 1만5천가구에서 2만가구인 것을 감안하면 한해 분양분의 아파트가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시장친화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이명박정부가 출범했지만 아직 정부 태도는 냉담하다. 이에 따라 지자체와 건설업계에서는 신정부의 눈높이가 오직 수도권에만 맞혀져 있고, 지방 부동산 시장은 '팽' 당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IMF보다 심각한 미분양

IMF 시절인 지난 1998년 대구 지역 미분양은 5천770가구. 당시 전국 미분양 11만가구 중 차지하는 비율이 5%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 2월 말 현재 전국 미분양은 12만9천가구로 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13%에 이르러 대도시 가운데 최대 규모다.

취약한 경제 구조에다 해마다 줄어드는 인구를 감안하면 대구의 경제력으로 버티기에는 이미 미분양 아파트 수가 한계점을 훨씬 뛰었다.

지역 건설업계 관계자는 "IMF 때는 국가 부도란 외부 환경 탓에 미분양이 발생했지만 지금은 과잉 공급에다 정부 규제란 시장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라며 "현재 상황이 계속된다면 지방 부동산 시장은 '공황 상태'로 접어들 것"이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지난 2006년부터 쌓이기 시작한 미분양 아파트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인 입주를 시작한다는 점. 지난해까지는 분양 후 준공 전 미분양 물량이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올해부터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쌓이게 된다. '불꺼진 아파트 단지'의 대거 등장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여기에 대구 미분양 아파트 1만6천232가구 중 실수요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전용 면적 85㎡ 이상인 중대형 물량이 1만가구로 70%를 점하고 있어 미분양 물량 해소는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방 미분양 원인은 수도권 정책의 폐해

미분양 아파트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일단 수요를 무시한 과잉공급과 고분양가, 여기에다 더해진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 그리고 집값 하락 우려에 따른 실수요자들의 사라진 구매 심리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방 미분양 사태가 결국은 수도권에만 초점을 둔 중앙 정부 정책의 폐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참여 정부 출범 이후 강남 집값이 폭등하면서 정부는 재건축 규제 등을 통해 수도권 아파트 공급을 제한했고 대형 1군 업체들이 지방 시장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미분양이 양산되기 시작한 탓이다.

화성산업 권진혁 영업부장은 "2003년까지 수도권 대 지방의 아파트 공급 비중은 6대 4 정도의 비율이었지만 지난 정부의 수도권 규제 이후 3대 7로 비율이 역전됐다"며 "대구나 부산의 미분양은 결국 정부의 규제를 피한 수도권 건설 자본이 대거 내려오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발표된 1·11 부동산 대책 또한 수도권에만 초점이 맞혀진 대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와 분양가 상한제 등이 지방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분양대행사 리코 최동욱 대표는 "대구나 부산의 경우 다주택자의 99%가 주택 소유 합산 가격이 종부세 대상인 6억 원 미만으로 수도권 아파트 한 채 값이 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정부에서 수도권 규제를 위해 획일적으로 지방까지 다주택자 규제를 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 부동산 시장의 거래 실종 현상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분양가 상한제도 수도권 기준에 맞춘 규제로 실제 지방은 상한제 가격이 일반 분양 가격보다 높은 웃지못할 상황도 일어나고 있다.

◆수도권에만 코드가 맞혀진 정부 정책

미분양이 쌓이기 시작한 2006년부터 대구시 등 지방자치단체들과 건설협회, 시공사들은 줄기차게 지방 부동산 대책안을 요구해 왔다.

핵심은 수도권과 차별화된 지방 부동산 대책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구시 건축과 관계자는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국토 해양부 등에 요구한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 10여 차례를 넘어설 것"이라며 "하지만 투기 과열 지구 해제와 주공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 사업을 빼고는 실질적인 조치가 현재까지 전혀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대구시와 건설협회 등에서 요구하는 미분양 대책은 ▷대출 규제 완화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제외 ▷미분양 주택 구입자에 대한 세제 혜택 ▷분양가 상한제 제외 등이다.

하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과는 무관하게 정부 정책은 수도권 시장 상황에만 맞춰져 온 것이 현실.

실제 지난주 국토해양부에서 신정부 출범 이후 국세청과 금융위 관계자 등 정부 기관들이 모인 첫 부동산 시장 점검회의가 열렸지만 주제가 최근 불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강북 집값 안정'이었을 정도로 지방 부동산 시장은 중앙 정부의 관심사와는 동떨어져 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지난 대선전 지방 부동산 규제 완화가 현실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팽배했지만 총선까지 지나면서 기대가 우려로 바뀌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은 세우지 않더라도 규제만이라도 풀어야 지방 시장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