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빠졌다! 방과 후 학교

입력 2008-04-15 07:51:21

대구 대남초교의 방과후 학교
대구 대남초교의 방과후 학교 '로봇교실'의 모습. 강사 김동희씨가 카이로봇 교구 조립법을 설명하자 학생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10일 오후 대구시 달서구 송현동 대남초교.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인 '로봇교실'에는 15명의 학생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카이로봇 교구(카이스트에서 개발한 로봇키트)'를 한창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떤 학생들은 드라이버를 들고 '토닥토닥' 끼워 맞추느라, 어떤 학생들은 컴퓨터와 로봇을 연결해 무언가 열심히 입력하는데 여념이 없다.

올해로 2년째인 로봇교실은 이 학교 학생들에게 꾸준한 호응을 얻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 특히 로봇 만들기를 좋아하는 남학생들에겐 인기 만점이다. 지난해 9월부터 수강 중인 5학년 이수림군은 매주 두 차례 열리는 이 수업이 마냥 기다려진다. 수림이는 "직접 만든 것을 집에 갔고 가기 때문에 엄마에게 장난감 사달라는 말을 안 한다"고 말했다. 이 수업에 참여한 학새이 상을 받기도 했다. 로봇교실 개설 때부터 수강하고 있는 4학년 김도균군은 지난해 4월 남부교육청 주최 기계과학탐구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도균이는 "로봇을 많이 만들면서 소심하던 성격이 적극적으로 바뀐 것 같다"며 "미래에 멋진 로봇공학박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강사 김동희(36·여)씨는 "자연스레 과학 원리를 익히는 것은 물론, 로봇을 만들면서 융통성과 집중력도 좋아진다"며 "일부 학생들은 동생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주고 있어 학부모들의 장난감 비용도 준다"고 자랑했다.

'학교는 단순히 교과 수업만 하는 곳'이라는 인식은 이젠 통하지 않는다. 학교들마다 방과 후 학교를 통해 평소 수업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굳이 자녀들을 사설학원에 보내지 않고 학교에서 웬만한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 특히 상당수 학교들이 다른 학교에서 찾기 힘든 , 자신들만의 톡톡 튀는 프로그램을 열어 차별화에 힘을 쓰고 있다.

◆체험학습 재미 '쏠쏠'

대구 청림초교는 지난해 4월부터 '아나운서반'을 열고 있다. 아나운서는 여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직종.학교측은 학생들에게 아나운서란 직업이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 이루어지는 이 수업은 어린 학생들에게 스피치 기술과 발표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 방송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준다. 강사 김경화(28·여)씨는 "학생들에게 마이크 사용법이나 기사작성법, 발음법 등 방송과 아나운서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틀에 박힌 이론수업보다 아이들에게 체험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북비산초교에는 지난 3월 말부터 매주 두차례 '체스반'을 운영하고 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한 결과, 일부에서 체스 교육을 원해 이 수업을 마련하게 된 것. 바둑이나 장기와는 달리 다소 생소한 이 게임은 특별 규칙이 많아 학생들에게 집중력과 사고력, 인내력을 높일 수 있다. 최혜영(37·여) 강사는 "게임이다 보니 아이들이 큰 흥미를 갖고 수업을 듣고 있다"며 "대구에선 낯설지만 이미 서울이나 부산 등지에는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학습효과 '쑥쑥'

포항 흥해중은 지난 8일 '뇌학습기억법반'을 개설해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중 1, 2학년 19명으로 구성된 수강생들은 수업시간에 공간지각법이나 숫자변환법, 영어단어 기억법, 연상법, 링크법 등 다양한 기억법 공식을 배우고 있는 것. 최순희(46·여) 강사는 "일종의 공부 기술을 가르친다고 보면 된다"며 "여러 공식을 터득하면서 짧은 기억을 장기적인 기억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초시계가 이 수업의 필수. 10초, 20초 등 짧은 시간을 재고 수업 시간에 여러 공식을 활용해보기도 한다. 최 강사는 "짧은 시간이니까 아이들이 집중을 잘 하고 재미있어 한다"고 했다.

북비산초교는 체스반 외에 '주산식 암산반'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개설된 이 수업은 초반에 주산을 배우고 주판이 머리 속에 그려질 정도가 되면 본격적으로 주판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암산을 배우는 식으로 이뤄진다. 암산을 속셈으로 하는 것보다 계산이 빠르고 집중력과 창의력을 높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것. 박원주(32·여) 강사는 "저학년의 경우 수학 기초를 빨리 다질 수 있어 인기가 높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 '대구 대남 초교'

"우리같이 해봐요~."

대남초교는 '방과 후 학교'의 '모범'으로 통한다. 2006, 2007년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방과 후 학교 지정 시범학교로 지정된 것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대남초교의 방과 후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대학교의 수강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점. 현재 26개 과목 45개 강좌를 열고 있는 이 학교는 자체 방과 후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수강신청을 받고 있다. 학부모들과 담당교사들의 신청서류로 인한 불편함을 없앤 것. 또 강좌를 한번 수강하면 수강료(2만~3만원)를 환불받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해 개설 후 학생들이 1주일 동안 수업을 듣고 강좌를 선택할 수 있는 '선수강 후불제'를 과감히 도입했다. 이를 통해 강사들 간의 경쟁을 붙여 수업의 질을 높이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이뿐 아니다. 방과 후 학교에 참여하려는 1, 2학년이 집에 갔다 다시 학교로 가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하기도 한다. 매년 프로그램을 개설하기 전 학부모들을 상대로 철저한 수요조사도 빼먹지 않는다. 신섭 교장은 "학부모들에게 학생들의 수업 활동 상황을 알리고 수업을 직접 참관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으로 2006년 3월 15%에 그쳤던 학생들의 방과 후 학교 참가율이 지금은 70% 가까이 된다. 또 방과 후 학교를 통해 학생들의 능력을 키운 덕분에 전교생의 30%가 컴퓨터 자격증을 받았고 전국글짓기대회에 8명이 입상하는 등 성과도 높다.

신 교장은 "저소득층이나 맞벌이 부부를 둔 자녀를 위한 30평 규모의 현대식 보육교실이나 POP글씨와 요가, 영어회화 등 지역 주민이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실도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라고 했다.

전창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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