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2등에 손수건 내민 철든 1등

입력 2008-04-12 07:52:07

▲ 초교 2학년 운동회 때 달리기. 오른쪽이 손현주씨.
▲ 초교 2학년 운동회 때 달리기. 오른쪽이 손현주씨.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따뜻한 바람을 가르며 한껏 달리고 싶은 요즘이다. 이맘때면 곳곳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 준비에 한창이다.

'달리기' 하면 항상 떠오르는 어릴 적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든 뭐든 남에게 지기 싫어했던 나는 달리기에도 반대표 선수로 활동했었다. 비록 운동회에서 반 대항 시합을 했을 때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속해 있는 반에서만큼은 1등이었다.

5학년 4월의 따뜻한 봄, 체육시간에 선생님께서 운동회를 앞두고 반대표 달리기 선수를 뽑는다고 말씀하셨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6명이 한조가 되어 출발했다. 그런데 내 옆 라인에 섰던 한친구가 나를 앞지르려고 하였다. 나도 있는 힘껏 뛰었고 도착점에 조금 빨리 도착한 내가 반대표로 뽑혔다. '박정숙' 그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한다.

일주일 뒤 운동회 날, 반 대항 달리기 시합 전 학급별로 100m 달리기 순서가 있었고 나는 또 정숙이와 같은 조가 됐다. 정숙이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기에 나는 사력을 다해 달렸고 도착점에서 결승 테이프에 먼저 닿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정숙이가 1등, 내가 2등이었다. 난 아픔과 패배에 대한 분노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울고 있는 나에게로 정숙이가 와서 당황한 기색으로 말을 건넸다. "괜찮나? 이겨서 미안하다. 정말." 그리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손수건으로 내 손에 묻은 피와 모래 먼지를 닦아주었다. 씩씩거리던 나는 그녀의 배려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 사건 이후로 승부 욕에 눈이 멀었던 나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조금 인정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숙이처럼 패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여유도 배웠다.

그 뒤로도 달리기 시합이 있을 때마다 정숙이와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여전히 경쟁했지만, 넘어지면서까지 그를 이기려고 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

10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일은 나를 조금 성장케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손현주(대구 달서구 상인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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