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보라색 도장 지워질까 손목도 안 씻어

입력 2008-04-12 07:54:33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시절엔 가을 운동회가 일년 중 정말 큰 행사였다. 2학기 시작과 더불어 운동회 준비로 분주했다. 그 중 달리기에서 1등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항상 먼저였기에 운동회는 늘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운동에 소질이 없어 체육시간에 영 흥미를 못 느꼈지만 달리기는 그나마 나의 희망이었다.

초등학교 1, 2학년 운동회 때 나는 달리기에서 1등을 했고, 6학년 언니들이 손목에 찍어주던 보라색 1등 도장이 너무 좋아 계속 씻지 않고 간직하겠다 떼썼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운동회를 앞두고 나는 며칠을 혼자 고민하며 끙끙 앓았던 적이 있다. 일곱 살에 학교를 들어가 또래들보다 체구가 작아 달리기 1조에 포함된 나는 1조에서 제일 컸기 때문에 그동안 1등을 했었고, 3학년이 되어서 갑자기 2조로 밀리게 된 것이다. 운동회 아침,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학교에 가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그간의 고민과 부탁을 털어놓았다. 선생님의 배려로 나는 다시 1조가 되었고 1등 도장을 손목에 새겼다. 나 때문에 2조로 밀려간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운동종목에서 그나마 희망을 가졌던 달리기였기에 지금도 운동회 때 달리기 1등함을 자랑하며, 만국기가 휘날리던 초등학교 운동장 전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김주연(포항시 남구 연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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