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대가야 무덤 속의 진실 밝혀져…학계 관심

입력 2008-04-11 09:32:44

▲ 고령 지산동 고분 발굴현장 공개를 앞두고 이태근 고령군수 등이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영현 원장에게 현장설명을 듣고 있다.
▲ 고령 지산동 고분 발굴현장 공개를 앞두고 이태근 고령군수 등이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영현 원장에게 현장설명을 듣고 있다.

베일에 가렸던 고령 대가야 무덤 속의 진실이 속속 드러나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고령 지산동 73·74·75호 고분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영현 원장은 "1년간 발굴조사를 통해 5세기 대가야 왕릉으로 추정되는 대형분(73호·75호) 2기는 고대 토목기법과 다양한 패턴의 순장곽으로 밝혀졌으며, 고분의 안팎에서는 대가야뿐 아니라 삼국시대 문화 연구에 매우 귀중한 학술자료가 될 수 있는 수많은 부장유물이 출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고령군은 대가야체험축제가 열리는 11일부터 14일까지 발굴조사 현장을 1년 동안 발굴과정을 담은 사진과 함께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목곽봉토분으로 밝혀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73호 고분은 지금까지 알려진 대가야 고분의 축조방식보다 시대가 훨씬 앞선 고대 토목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고분은 내부공간시설의 둘레를 따라 흙둑과 흙자루를 이용해 쌓은 후 22개의 돌띠(구획석렬:區劃石列)를 통해 직경 23m, 높이 7m의 원형 봉분을 축조하는데 22개의 조직이 분담, 깊고 넓은 무덤구덩이(묘광:墓壙)를 파고 그 안에 주곽(主槨)과 부장곽(副葬槨)을 T자형으로 배치했으며, 나무로 된 곽(槨)과 무덤구덩이 사이 공간은 깬 돌(할석:割石)을 채웠다.

일제강점기 이후 발굴조사된 많은 지산동 중·대형 봉토분의 유물이 대부분 도굴됐지만 이곳은 수차례의 도굴 시도에도 무덤 사이를 채운 돌 덕분에 주체부의 도굴을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학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제75호 고분은 직경 28m×26m 규모의 타원형 봉분으로 20개 조직이 각각의 범위를 나누어 담당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내부는 73호분처럼 깊고 넓은 무덤구덩이를 판 후 그 안에는 대형 수혈식 석실과 부장품 곽을 T자형으로 배치했다. 이 고분은 일반적인 수혈식 석실 구조와 달리 얇고 평평한 고분의 뚜껑돌(개석:蓋石)을 떠받칠 사각기둥 모양의 대들보를 일정한 간격으로 걸친 다음 개석을 덮은 특이한 구조로 밝혀졌다.

석실을 중심으로 무덤구덩이의 벽면을 따라 일정 간격으로 돌아가며 여덟 명의 순장자를 안치했고, 소나 말 등 동물을 순장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순장부 2곳도 발견됐다. 특히 순장곽의 순장자 머리 부분에서 철제관식(冠飾) 1점이 출토됐는데 관모장식 초기형태의 철제관식이 출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밖에도 이번 조사에서 그릇받침과 목단지 등 대가야 양식 토기류 200여점과 환두대도·관모장식·화살촉·창 등의 철기류와 등자·재갈 등의 마구류, 경옥제 곡옥과 유리옥 1천여점이 결합된 목걸이·금반지·금귀고리 등의 장신구와 금동화살통장식·금동팔찌장식·은제귀면장식 등도 출토됐다. 제73호의 목곽뚜껑 위에 금분(金粉)으로 장식한 나무함 속에 넣어 올려두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가운데 통일신라시대 토기의 대표적인 기종의 하나로 알려져 온 주름병과 거치상점열문(鋸齒狀點列文)이 시문된 작은 바리(소완)는 중국 등 외국으로부터의 들여온 것으로 추정돼 기존의 학설을 바꿀 만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령·정창구기자 jungc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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