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힘겨운 싸움에서 살아난 것을 축하드린다. 아마 오늘 새벽까지 금빛 찬란한 배지를 단다는 흥분에 잠을 설쳤을 것이다. 그런 벅찬 첫날 댓바람에 패자의 눈물을 돌아보고 반대편을 포용하라는 얘기는 않겠다. 다만 하루아침에 수직 상승한 신분을 생각하며 몇 가지 당부하고자 한다. 주제 넘는 기우라 해도 좋다.
여러분은 이제 4천900만 국민을 대표하는 299명의 하나다. 각자가 독립적인 헌법기관의 권좌에 오른 것이다. 나라에 간섭하고 국민에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자리다. 주어진 임기 4년은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는 한 거칠게 없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는 배짱 편한 권력이고 명예다. 오는 6월 배지를 다는 순간 실감할 것이다.
대우 또한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을까 싶다. 장관급 억대 연봉에 온갖 품위 유지비가 별도로 나온다. 으리으리한 사무실에 공무원 신분 보좌진 5명이 딸리고, 수완만 좋으면 매년 1억수천만 원을 후원금으로 거둬 쓸 수 있다. 모든 교통수단은 1등석에 공짜로 모시며, 어딜 가도 상전 대접이다. 이 정도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늘어지는 팔자이고, 국회의원 위세로 즐기는 '은밀한 매력'은 상상 이상의 것들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새내기 국회의원은 권력의 단맛부터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 제 명을 다하지 못한 문제 의원들을 보면 초장에 버릇을 잘못 들인 경우가 태반이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해 있을 때 '의원님, 의원님' 하는 속삭임에 멋모르고 엮인 경우들이다. 가장 썩은 국회 중 하나였던 지난 16대 때 사법처리 당한 의원이 20%에 달했던 것도 그런 정신머리 때문이었다. 금배지가 가문의 영광은커녕 되레 불행의 씨앗이었던 사례는 부지기수다.
처음부터 정치를 잘 배워야 한다. 그것은 본업에 충실하는 것이다. 우선 실력을 길러야 한다. 나름대로 생업 현장에서 이런저런 전문성을 쌓았다고 할지 모르나 천만의 말씀이다. 복잡다단한 국정을 따지고,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관료를 상대하려면 공부해야 한다. 어설프게 하다간 전 국민 앞에서 비웃음 사기 딱 좋은 게 그 동네다. 호통이 통하던 시대는 호랑이 담배 먹던 때다. 남과 다른 전공분야를 닦으면 더 좋다. 국회 도서관은 우리나라 최고의 자료만 116만 권을 소장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입법 공부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이다. 불 환한 국회도서관에 있는 당신은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그리고 성실하게 국회에 자리를 지킬 일이다. 17대 국회 본회의 출석률을 보면 농땡이 중에 대구 경북 출신들이 눈에 띄게 많다. 출석률이 90% 이상은 3명이 고작이고 70%대가 6명, 나머지는 80%대다. 국회를 땡땡이치는 것은 학생이 수업을 빼먹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보다 더 나쁘다. 학교는 학생 혼자의 문제지만 국회 결석은 자신을 대표선수로 뽑아 올려보낸 유권자 모두에 대한 배임이다. 의원이 국정을 토론하고 국회 의사를 결정짓는 회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또 하나는, 지역구에 붙어사는 습관을 들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선거철에나 굽실거리는 것은 철새 짓이고 유권자 우롱이다. 주말에는 서울 주변 골프장이나 찾지 말고 무조건 내려오는 게 지역구에 대한 예의다. 소주 한잔을 마셔도 주민과 어울리면 그게 곧 민생 체험이다. 아닌 말로 허겁지겁 선거 치른 마당에 지역 사정을 알면 얼마나 알고 국회에 들어가는 건가.
잘라 말해 여러분 선배 의원들은 이 지역을 위해 한 게 별로 없다. 정권을 뺏겨서, 힘없는 야당이라서 방법이 없었다고 하나 공허한 소리다. 지난 5년 동안 광주전남이 5개 대형 국책사업에만 45조를 가져가는 사이 대구경북의 정부 투자는 8조가 고작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회의사당에서 항의농성을 했다거나 예산 당국 앞에 드러누웠다는 이 지역 의원 얘기를 들어본 바가 없다. 고향이야 죽든 말든 일신의 영달에만 빠져 지냈다고 하면 항변할 의원이 몇일지 궁금할 따름이다. 새내기 당신들은 그러지 않기 바란다. '웰빙 의원' 소리를 치욕으로 여겨야 한다. 선거 내내 모두가 중앙 예산을 왕창 따와 이 지역을 살리겠노라고 큰소리쳤다. 지켜볼 것이다. 여러분의 성적표는 오늘부터 매겨지기 시작했다.
金 成 奎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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