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를 지켜라/모방범죄

입력 2008-04-10 07:08:19

친절한 과정 묘사 '따라하기 십상'

영화는 현실을 암시하는 걸까. 지난해 유독 어린이 납치 및 유괴에 관한 영화가 많았다.

현실과 영화는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해나가면서 실마리를 주고 미리 경험하게 한다.

지난해 개봉한'밀양' '세븐 데이즈' '그놈 목소리'등은 어린이 납치'유괴사건을 정면으로 다뤄 화제가 됐다. 최근 개봉한 '추격자'는 경찰의 안이한 대응방식이 안양 어린이 실종사건과 닮아있어 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들 영화는 단지 영화로 즐기기엔 현실과 너무나 닮아있고, 그래서 더욱 끔찍하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범죄의 과정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납치의 계획'방법'협박의 과정까지 예외가 없다. 1991년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다룬 '그놈 목소리'는 영화에서 실제 범인의 목소리를 들려줘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화가 납치 등 범죄 수법을 정교하게 다루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모방범죄를 촉진시키는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계명대 경찰행정학부 허경미 교수는"한층 진화하고 있는 범죄수법이 영화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노출되면서 모방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몰랐던 범죄 수법을 주변인'영화'인터넷 등을 통해 배워 익히게 되는데, '저 사람은 저런 허점 때문에 실패했지만 좀 더 치밀하게 계획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

언론도 마찬가지. 한 방송사는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사건 당시 CCTV 화면을 보도, 범인을 잡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범죄 수법을 자세히 알려줘 모방범죄의 가능성도 낳았다. 실제로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어린이 납치 미수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허 교수는 "범죄영화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영화는 모방을 촉진시키는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인천 어린이 유괴 살해사건에서 드러난 범죄방법이 영화 '그놈 목소리'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모방범죄'에 대한 의혹과 논란이 발생한 바 있다. 지난해 전주에서 벌어진 아버지를 상대로 한 납치자작극의 범인도 이 영화를 보고 흉내냈다고 자백했다.

한편 '범죄영화가 모방범죄를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는 "영화가 청소년 정서 등에 미치는 영향이 없지 않지만, 모방범죄로 연결시키는 것은 인과관계를 너무 단선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영화와 현실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관계'라고 말했다. "영화는 사회의 예민한 바로미터인 만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강력 범죄에 대한 두려움, 분노를 영화화할 수밖에 없어요. 범죄의 수법을 전달한다는 점에선 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추격자' '살인의 추억'과 같은 범죄 영화들은 범죄를 단순 재현했다기 보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주변부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통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오히려 비중이 크다는 것. 심 교수는 "감독의 의도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어린이 유괴'납치를 다룬 영화

그놈목소리 (2007.2.1개봉)

♠ 주연:설경구/김남주 (12세 관람가)

♠ 2006년 1월29일 공소시효가 만료된 1991년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모티브로 한 픽션 영화. 1991년 방송국 뉴스앵커 한경배의 9살 아들 상우가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지고, 1억원을 요구하는 유괴범의 피말리는 협박전화가 시작된다. 사건발생 40여일이 지나도록 상우의 생사조차 모른 채 협박전화에만 매달려 일희일비하는 부모들의 절박한 심정을 담아낸다.

밀양 (2007.5.23)

♠ 주연:전도연/송강호(15세 관람가)

♠ 33살의 신애는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아들 준이와 함께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향한다. 밀양에서 피아노학원을 열고 정착한 신애는 어느날 아들 준이를 유괴당한다. 돈을 마련하라는 유괴범의 전화를 받고 아들을 돌려달라고 울부짖지만 아들은 시체로 돌아온다. 영화는 그 후 피폐해지는 신애의 영혼을 그려낸다.

세븐데이즈 (2007.11.4)

♠ 주연:김윤진/김미숙(18세 관람가)

♠ 승률 100%의 변호사 지연은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지만 하나 뿐인 딸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다. 모처럼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 딸의 운동회에 참가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 딸은 납치당하고,'아이를 살리고 싶다면 7일 내에 살인범 정철진을 빼내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제한된 시간동안 살인범을 석방시키기 위한 지연의 분투가 시작된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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