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대마불사에서 난마불사로

입력 2008-04-09 07:00:00

지난달 중순 미국 제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서브프라임사태의 영향으로 부도위기에 몰렸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RB)은 1위의 투자은행인 제이피모간체이스로 하여금 베어스턴스를 합병토록 함으로써 베어스턴스사의 부도를 막았다.

이 과정에서 연방준비은행은 종전 상업은행에 대한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에서 한발 나아가 사상 처음으로 투자은행에 대해서도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맡게 됐다. 연방준비은행이 베어스턴스의 부도가 가져올 영향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했는지 헤아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too big to fail'이 아니라 'too entangled to fail'이라고 표현했다. 베어스턴스가 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부도를 방치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 회사의 파생상품거래가 너무나 여러 상대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이 회사가 무너지면 그 영향이 어디까지 어떻게 미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大馬不死(대마불사)가 아니라 亂麻不死(난마불사).

미국 금융계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금융감독이 너무 느슨해서 그렇다는 반성하에 헤지펀드 등 종전 감독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부문에 대한 감독강화를 해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하다. 미국의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지난 3월 말 연방준비은행으로 하여금 헤지펀드를 포함한 금융시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토록 하고 금융감독기구를 통폐합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는 금융감독 개혁안을 내놓았다.

졸속으로 감독강화를 추진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 2003년 엔론사태 등 회계부정의 대책으로 나온 사베인스-옥슬리법이 기업에 지나친 부담을 주어 결국 몇년 후 이를 완화한 사례를 지적하기도 한다.

또 감독을 아무리 강화하더라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이 가져다주는 효율성·생산성 등을 누리는 대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금융위기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기는 이노베이션의 대가(Crisis is the price of innovation)다. 금융감독이 아무리 엄격해지고 정교해지더라도 위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으므로 위기 발생 후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가급적 신속하게 이를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우리나라는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관련 부실채권이 금융회사들이 일부 노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PF대출이 우려되고 있지만 감독당국이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듯하다.

1997년 말 금융위기 이후 금융회사의 리스크관리시스템도 개선되어 어느 정도 자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미국의 서브프라임사태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의 감독당국이나 금융회사가 특별히 잘 해서라기보다는 아직 미국에서처럼 서브프라임모기지를 증권화하고, 이를 헤지펀드들이 사주고 하는 단계로까지 금융기법이나 금융시장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의 감독능력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지만 더 앞서가는 금융시장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 정부 들어 규제개혁, 특히 금융규제 개혁을 주요 정책의 하나로 채택하여 역점 추진하고 있다. 금융산업에서 민간의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면 '고부가가치의 좋은 일자리(decent job)'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현행 각종 금융규제 등을 분석, 존치·완화·철폐 여부를 엄격히 판단한다고 한다.

또 최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소위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령이 입법예고됐다. 새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정책에 따라 기존 자본시장 관련 모든 금융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 시장의 자율과 창의, 경쟁을 촉진하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선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진입 단위 세분화와 위험에 상응하는 자기자본 설정을 통해 전문금융투자업자와 대형투자은행 등장을 지원하고, 업무 위탁 범위 확대, 장외파생상품 거래제한 완화 등 영업활동 관련 규제를 완화한다. 또 증권인수, M&A 업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신용공여 및 지급보증업무 등 다양한 겸영을 허용한다고 금융당국은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의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이 출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언론은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화하기 위해 이제 금융강국이 되어야 한다. 위의 정책들은 우리나라가 금융강국으로 도약하기에 꼭 필요한 정책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금융자유화가 진전될수록 그에 따라 금융위기의 발생가능성과 그 강도가 커질 수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당국만이 아니라 모든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이러한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강세 여신금융협회 상무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