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4월 3일 대구 서구갑 선거구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당시 선거는 '5공 청산'과 '3당 합당'의 정당성을 심판받는 엄청난 상징성을 띠는 선거였다. 문희갑 당시 민자당 후보의 강력한 라이벌은 무소속 정호용 후보였다. 그는 전두환, 노태우와 육사11기 동기이면서 5공화국을 세운 주역. YS, JP가 그의 의원직 사퇴를 3당합당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울 정도로 중량급 정치인이었다. 이때 민자당은 의원직을 사퇴한 정 전 의원이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하면서 힘겨운 싸움에 직면했다. 민자당은 국회의원 수십명을 붙여 37개 동별로 '동책'을 맡도록 하고 엄청난 선거자금을 뿌렸다. 결국 투표일을 열흘쯤 앞둔 90년 3월 24일 정 전 의원이 안기부와 여권의 집요한 압력과 설득에 굴복, 후보를 전격사퇴한다.
선거 결과 민자당 문희갑 후보가 총투표수 8만4천649표 중 4만1천970표를 얻어 당선됐다. 차점자인 민주당(가칭) 백승홍 후보는 3만4천242표, 김현근 후보는 5천199표를 얻었다. 하지만 정호용 파동의 영향으로 투표율은 64%로 저조했다. 4·3보궐선거는 충북음성의 야당 후보 당선과 더불어 상처투성이의 승리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14대 총선에서는 정호용 후보가 다시 문희갑 후보를 이기고 당선된다.
▶1925년 중앙도서관 개관 ▶1905년 보성학교(고려대학) 설립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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