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가이드] 선행학습의 문제점·영역별 대응책은?

입력 2008-04-01 07:31:57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선행학습' 열풍에 휘말려 있다. 그러나 학교 수업시간보다 먼저 진도를 나가는 것을 교육학적 용어로 선행학습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조기진도라고 해야 한다. 조기진도는 소수의 학생들에게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학생들에게는 학습의욕을 떨어뜨리고 자칫하면 공부를 포기하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기진도는 공교육과 교실붕괴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리 배워서 알고 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딴 짓을 하기가 쉽다. 교육학자들과 입시전문가들은 조기진도는 대개의 경우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지적한다.

◆선행학습과 교실붕괴

수학 시간에 상위권 학생은 엄한 선생님이 들어오면 수업 내용과 관계없는 보다 어려운 문제를 연습장에 적어 놓고 풀이한다. 좀 너그러운 선생님이 들어오면 처음부터 편하게 잠을 잔다. 낮에 자 두어야 밤에 좋은 컨디션으로 학원 수업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급석차가 뒤쪽인 10여명의 학생들은 선생님이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든 이해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전혀 수업에 관심이 없다. 이들은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서 마음껏 떠들거나 아주 편하게 잠을 잔다. 상위권과 하위권이 수업에 관심이 없으니, 중위권은 덩달아 학습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교실 분위기는 한없이 어수선하다. 선생님이 아무리 노력해도 학생의 주의를 끌 수 없다. 예전에는 학급의 상위권 학생들은 수업에 매우 열중했기 때문에 나머지 학생들도 같이 긴장해서 따라오는 경향이 강했다. 이제 학교수업을 통해 무엇을 얻겠다는 학생들이 적으니 교실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실태와 대비책

▷수학

모든 교과가 다 그렇지만 특히 수학은 한 단원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한 뒤 응용 문제로 그 내용을 깊이 있게 다져야 다음 단계로 쉽게 넘어 갈 수 있다.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어느 한 부분만 소홀히 해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많을 수험생들이 현재 배우고 있는 과정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충분한 연습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은 학습의욕을 상실하고 수학에 흥미를 잃는다.

대부분의 수학 교사들은 중3 때 10-가, 나를 배운다고 해서 고교로 진학해서 수학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고1 때 수Ⅰ·Ⅱ에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고1 과정을 충분히 다져놓지 않으면 그 다음 무엇을 배우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수학은 처음 배울 때 개념 파악을 잘 해야 하는 과목이다. 첫 단계에서 어설프게 이해하거나 단순히 문제 풀이 위주의 패턴에 집중하다 보면, 수능시험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다소 생소한 유형이 나오면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은행에서 출제되는 모의고사에서는 고득점을 하는데 실제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는 수험생들 중 상당수가 조기진도로 그 전 단계의 기초를 충분히 이해하고 연습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영어

영어는 새 정부의 영어공교육 강화 방침 등과 맞물려 선행학습을 주도하고 있는 과목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영어의 경우 조기 진도라는 말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문법을 예로 들어보면 부정사, 동명사, 분사와 같은 준동사는 중학교에서도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도 배운다. 출제되는 문제의 어휘와 난이도에서 차이가 날 따름이다. 일부 학자들은 어린 나이에 외국어를 시작해야 2개 국어 동시 구사 능력이 배양된다고 주장한다. 중·고생 나이만 돼도 논리로 외국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원어민 수준에 이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기 교육이 지나칠 경우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취학 전 어린이의 경우 영어와 우리말의 어순과 논리 전개 방식의 차이 때문에 모국어 구사 능력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은 오히려 생산성 면에서의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현재의 취학 전 아동의 영어 유치원과 중·고생의 TOEIC, TOEFL, TEPS 열풍이 과연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예를 들면 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 글을 이해할 수 있는 교양과 배경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가능한데 그 내포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능 영어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언어 영역에 적용되는 풀이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말 어휘 실력과 독해 능력이 없으면 고급영문의 해석과 이해도 어렵다.

일반적으로 저학년일수록 한군데 이상 학원에 다닌다. 이곳저곳 다니는 곳은 많은데 실제로 얻는 것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영어 교육 전문가들은 많이 별려 놓기 보다는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본문만 다 암기해도 엄청난 학습이 된다는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어휘들을 영영사전을 통해 철저하게 정리하고 암기하면 학원에 한두 군데 다니는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

▷언어·사회과학

언어는 국어 교과서를 미리 가르치는 것보다는 일부 부유층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논술, 철학, 독서지도 등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일부 학원에서 고액의 수강료를 받고 논술과 심층면접 등의 강의를 하고 있다.

어린이와 중·고생을 상대로 철학 강의와 독서 지도를 하는 경우 나이와 지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어려운 내용과 딱딱한 논리를 다루는 사례가 많다. 정도가 지나치면 독서가 주는 재미를 잃기가 쉽다. 초·중학생의 경우 논리보다는 작품을 통한 감수성과 직관력, 상상력의 배양에 힘쓰는 것이 나중을 위해 훨씬 도움이 된다. 많은 작품을 읽고 바탕 지식을 착실히 쌓은 다음 논리적 훈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논술을 잘 하기 위해서는 글쓰기 요령에 앞서 많이 읽어야 한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쌓게 되면 글쓰기 요령은 쉽게 배울 수 있다.

심층면접이나 논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평소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시사적인 쟁점들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사회과목의 다양한 기본 개념들을 먼저 이해하고 나서 그 내용을 현실 문제와 접목시켜 사고하는 훈련이 논술과 심층면접에 가장 바람직한 대비책이다.

과학 과목의 경우 일부 사설학원에서 중학교 때부터 영재학교나 특목고를 목표로 어려운 과정을 미리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들을 제대로 소화하면서 따라가지 못할 경우 흥미와 학습의욕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일부 학원에서는 심층면접에 대비한다며 대학 과정의 어려운 내용을 가르치기도 한다. 지금까지 여러 대학에서 출제된 과학과목의 기출문제를 검토해 보면 고교 과정을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따라서 교과서의 기본 내용을 면저 이해하고 거기에 바탕해서 심화 학습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합 대책

소수의 우수한 학생에게는 조기 진도가 다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조기진도는 학교에서의 수업 집중도를 떨어뜨리기가 쉽고, 학습의욕을 상실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또 처음 배울 때 철저히 이해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그 부분을 틀릴 가능성이 높다. 먼저 학부모들이 진도를 빨리 나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리 쉬운 단원이라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깊이 있게 이해하고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기 진도보다는 예습하는 습관을 가지면 새로운 내용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고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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