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가득한 옷·모자…국적불명 언어의 백화점"
"What the….(뭐야 이거?)" 1년 전 한국에 온 캐나다 출신의 새라 브리턴(Sarah Breton·27·여)씨. 가끔 도심지에 나올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했다. 명색이 대도시 중심가인데도 도무지 한국의 특색있는 문화를 찾기 힘들기 때문. 오히려 상점 간판들은 물론이고 티셔츠와 모자, 양말, 공책, 학용품, 화장품,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온통 영어로 뒤범벅이 돼 있었다. 이쯤되면 굳이 '영어 몰입 교육'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온통 영어에 둘러싸여 사는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제대로 쓰인 영어를 찾기 힘들다는 점. 철자가 틀린 건 애교다. 낮뜨거운 문구가 가득한 티셔츠를 입고 활보하거나 원어민조차 이해하기 힘든 표현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특히 예쁜 곰돌이 캐릭터와 함께 '부비(booby·젖가슴의 외설스러운 표현)'라고 적혀 있는 슬리퍼와 '퍼블릭 마스터베이터(Public masturbator·공공장소에서 자위행위하는 사람)가 쓰인 티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는 남성을 보고는 아예 기겁을 했다. 새라씨는 "얼마나 영어가 많이 쓰이는지 오히려 길을 찾기 편할 정도"라며 "영어를 쓰면 '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우리말이 서툰 새라 브리턴씨는 호주 출신인 리아 브로드비(Leah Broadby·28·여)씨와 함께 도심을 둘러봤다. 출발지는 시내 모 대형서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자 영어로 된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Herb in Aroma.' 새라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무슨 말이죠? 향기안에 허브가 있다는 얘기인가요?" 'Aroma of herb'가 정확한 표현. 새라씨가 문구코너로 잡아 끌었다. 가장 엉터리 영어를 많이 쓰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녀가 공책 한권을 내밀었다. '해피 바이러스(Happy Virus)' 최근 행복을 퍼뜨린다는 의미로 수년 전부터 유난히 많이 쓰이는 조합어. 대중가요와 만화, 의류, 학용품까지 별도 코너가 있을 정도로 일상화됐다. 새라씨는 이 말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왜 바이러스가 행복할까'라고 의아스럽다는 것. 리아씨는 생일 축하 카드를 집어들었다. '…on new lovely baby's birth.' 사랑스러운 아기가 임신을 했다는 말이 된다. 새라씨가 뽑아든 다른 카드에는 'I always do ♥ you'라고 적혀 있었다. '너랑 항상 성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고, 이를 외설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말이란다. 이들 모두 아이들을 위한 카드였다.
아동복 매장의 간판도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Hunt Kids.' 아이들을 사냥하라는 뜻이다. 아동복 매장에서 아이들을 사냥하라니. 두 사람은 한 속옷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yes'만 다섯번이 될 정도로 간판에 영어가 가득했다. 왜 이런 표현을 늘어놨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오가는 외국인이 많고 클럽과 의류매장이 밀집한 로데오거리로 들어섰다. 가게 안에 걸린 상의에는 'F'로 시작하는 욕설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의류 매장과 노점에 진열된 옷과 모자, 양말들은 국적 불명 영어 백화점이었다. "I'll teach you how to fuck(내가 성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주지)", 'Balls(고환)' 등등.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든 외설스런 표현들이 난무했다. 리아씨가 답답한 듯 말했다. "저는 도대체 왜 이런 말들을 써놨는지 모르겠어요. 문법적으로도 맞지 않거니와 의미도 전혀 통하지 않거든요." 또다른 티셔츠에는 'The taste of the asshole'이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asshole'은 항문이라는 뜻. 그 자체가 욕설인데다 '항문의 맛'이라니.
리아씨가 "엉터리 영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이라며 화장품 매장에 들어섰다. 그녀가 집어든 마스크팩의 설명서에는 'immortality face'(불멸의 얼굴)라고 적혀 있었다. 마스크팩을 한번 하면 절대 죽지 않는 얼굴이 된다니. 세계가 놀랄 만한 제품이다. 영어가 쓰이지 않는 화장품이 없었고, 어디서 찾았는지 모를 어려운 표현들만 가득했다. 리아씨는 "표어나 간판, 광고 등에서 굳이 영어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영어는 그저 의사소통 수단일 뿐 많이 쓴다고 멋있어 보이거나 우월해지는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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