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대학병원 의사의 세토끼

입력 2008-03-27 07:13:48

대학병원에 근무하면 주변에서 과연 '정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교수'라는 직함이 붙는데 정말 강의를 하는지, 연구하고 논문도 쓰고 그래서 발표도 하는지 궁금해 한다. 물론 진료와 수술도 마찬가지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모두 '그렇다'이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과대 교수에게는 세가지 임무가 있다. 교육과 연구, 그리고 진료가 그것인데 다른 분야의 교수에 비해 진료라는 한가지가 더 붙는 셈이다. 세가지 모두가 중요하지만 그래도 굳이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열거한 순서대로인데, 한마리 토끼도 잡기 어려운 판에 세마리나 쫓는다니 남들이 웃을까 부끄럽다. 이번에는 첫번째 토끼인 '교육'부터 소개할까 한다. 교육의 대상은 의대 학생(요즘은 의학전문대학원생)과 외과 레지던트이다. 의대 학생에 대한 강의시간은 진료과목에 따라 서로 크게 다른데 내 경우엔 의대 교실에서의 강의는 학기당 스무시간이 안 된다.

그러나 학생들을 데리고 병원 회의실에서 강의하고, 수술실과 외래, 병실 회진을 통한 교육은 일정표에 따르면 한주당 스무시간이 넘으니 학기당 300여시간이 강의 시간인 셈이다. 더구나 외과에는 학생 교육과 일정만을 전담하는 임상강사가 있고 교대로 맡는다. 아무리 바빠도 이 교육담당 임상강사의 전화를 받으면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 "다섯시에 학생들과 회진입니다." "수요일 오후 네시에 강의할 차례입니다." 등등 도저히 빠트릴 수가 없도록 한다.

그런데 학생 교육에 너무 비중을 두면 그 선배들인 레지던트들이 조금은 시큰둥해 진다. 그럴 때면 "자네들은 돈을 받고 배우지만 학생들은 돈을 내고 배우니 더 잘해 줘야겠지?"라고 억지 농담으로 위로를 한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요즘에야 봉급이 은행계좌로 들어오지만 과거엔 현금이 든 봉투로 받았는데 선배 레지던트 한분은 한번도 부인에게 봉급을 안 전해 주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지던트들의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는데 부인들끼리 월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그 선배의 부인은 "외과 레지던트가 무슨 봉급이 있나요?"라고 말해 주위 사람들을 대경실색하게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은 저도 이상했어요. 그래서 남편한테 물었더니 '돈 안 내고 배우는 것만도 너무 감사한데 어떻게 그런 염치없는 소리를 할 수가 있어?'라고 핀잔을 주기에 그 후론 일절 다시 물을 수가 없었지요…."

그 이후로 선배는 할 수 없이 봉급의 일부를 다시 다른 봉투에 넣어 부인에게 전했다고 한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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