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명품]8대째 이어오는 도공의 가문 도예가 김선식

입력 2008-03-27 07:21:34

"기운 치솟는 그릇, 장작가마에서만 나오죠"

도자기의 고장, 문경에는 자기(磁器) 공장으로 불리며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20여개나 있다. 문경에서 가업으로 대를 잇고 있는 곳은 몇 안 되고, 대부분 외지서 들어와 도예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재 아래의 문경읍 관음리 용흥초등학교와 접한 노송 숲 속에서 장작 가마인 관음요(觀音窯)를 이끌고 있는 도예가 김선식(金善植'39'사진)씨는 8대째 이어져오는 도공(陶工)의 가문(家門)답게 불과 흙의 농사, 도공예를 업(業)으로 삼아 작품 하나하나에 열정을 뿜어내고 있다.

타고난 손재주에다 자라는 동안 부친 김복만 도예가(2002년 작고)로부터 직접 보고,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7남매 중 혼자 가업을 잇고 있는 김씨는 20년 경력의 도공다운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

"아버지가 이뤄 놓은 것을 물려받아 먹고살고 있을 뿐입니다. 유행에 따라가기 보다는 장작 구하기에서부터 도자기 굽기까지 오로지 한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관음요가 30년 전부터 여러 가지 색깔의 청화백자를 구워내고 있는 데 대해 김씨는"요즘은 안료와 기술의 발달로 원하는 색은 뭐든지 내지만 장작불로 고유색깔을 내기까지는 아버지 때부터 지속되고 있는 도공의 열정이 흙과 불에 스며든 때문"이라고 말한다.

청화백자'분청사기를 특화해온 그는 근래 들어 '경명진사(鏡明辰砂)'라는 대작을 만들어냈다. 2006년 4월 경명주사로 색깔을 내는 '도자기 전사유약조성물'특허를 받은 데 이어 '관음 댓잎도자기'제조방법에 대한 특허권도 획득한 것.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았기에 숙련기간 없이 본격적인 도예활동에 나서 '경명다완'등의 걸작을 만들어내며 '관음요'특유의 색깔과 컨셉트를 지닌 도자기를 창출해낸 것이다.

가스'전기 가마는 천편일률적인 색깔을 내지만 장작 가마는 사철, 그리고 나무에 따라 다른 색깔을 낸다. 그래서 수년간에 걸쳐 장작을 준비해 다듬고 말린다. 가마 옆에 산더미처럼 쌓인 소나무 장작을 두고, 김씨는 "재로 변하는 시간이 참나무보다 빠른 소나무를 도끼로 찢어야 나무결이 좋아 불길에 운치가 있으며, 도자기 색깔도 잘 난다"고 말한다. 나무가 마를수록 화력이 좋아져 가스보다 더 깊은 맛을 내기 때문에 장작을 패서 재놓은 채 찬바람으로 말리고 사흘 동안 열풍을 가하는 과정이'키 포인트'라고.

최근 제자 두 명을 배출, 직접 흙가마를 지어줬다는 김씨는 "옛날처럼 배고파서는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없고, 화려한 작품도 나올 수 없다"면서 "작품을 판돈이 100원이라면 90원은 다음 작품을 위해 투자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보장받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몇년간 만들어야할 다완을 주문받아 두고도 외부 사람을 불러 다량 제조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그의 소신 때문인 가 싶다. 이로 인해 그가 만들어내 '미산(彌山)'이란 아호를 새긴 도자기가 시중에 흔치않고 값 또한 싸지 않은지도 모른다. "만약에 전기'가스 가마를 한번이라도 썼더라면 많은 돈을 벌었을 테고, 지금쯤 어렵고 힘든 장작 가마를 피우고 있진 않겠죠." 밤을 꼬박 새가며 기운을 다 빼야하는 장작 가마에 불을 연중 10회 가량 피우니, 40~50일에 한번쯤 도자기를 굽는 셈이다.

하루라도 흙을 만지지 않고 물레를 돌리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김씨는 특별히 그림공부를 하지 않았는데도 도자기에 그림을 잘도 그린다. 발톱 5개를 가진 용, 포도문양, 대나무, 목단, 풀, 나비 등은 그냥 아버지가 그린 것이기에 하루 수백개에서 수천개도 쉽게 그릴 수 있단다. 그림은 누가 많이 보고 그렸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도공의 계보로 볼 때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김씨는 6월15일 경기도 분당 성남아트센터에서 수도권 첫 도예 전시회를 연다. 지난 20년간 연구, 만든 작품 200여점을 쏟아놓을 예정이다. 054)571-5783.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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