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연극인생…'만화방 미숙이' 주연 김현규씨

입력 2008-03-26 09:07:08

대구에서 활동 중인 최고 원로 배우 김현규씨. 전국에서도 60대 이상 현역 배우는 드물다. 다섯 손가락을 꼽기도 어렵다. 김현규씨는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에서 육군상사 출신의 만화방 주인 장봉구역을 맡고 있다. 23일까지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만 235회 공연을 마쳤다. 후배들을 격려하고 다독거려온 팀의 중심이기도 하다.

'정확한 나이가 얼마인가요?'

"40입니다"

김현규씨는 1945년 1월 생이다. 그럼에도 "연극 인생이 40년이니 40세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고 했다. 그가 물리적 나이를 옆으로 밀쳐놓는 것은 연극이 그의 인생에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나는 연극판에서 내세울 게 없어요. 특별히 내 색깔을 내세우지도 않았고요. 나는 연극판의 일원으로 내 일만 충실히 했어요."

김현규씨는 배우로만 활동했다. 연극생활 40년, 연출 한번 해본 경험이 없다. 1970년대 대구에는 소극장 연극붐이 일었다. 연극 배우들이 너도나도 연출로 돌아섰다. 배우가 아니라 연출이 중심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배우보다 연출가가 더 많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그러나 그는 늘 배우로 무대 위에 서 있었다.

김현규씨는 1965년 초 연극 '혈맥'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1964년 겨울 내내 호주머니에 군고구마 넣고 손 녹여가며 연습한 작품이다. 번역작품 오이디푸스, 햄릿, 오델로 등에 수없이 출연했고, 갖가지 창작극과 원술랑, 원효 등 귀에 아련한 작품에 출연했다. 지금까지 대략 200여 작품에 출연했다. 출연횟수를 묻자 "글쎄, 얼마나 될까…. 모르겠네요"라고 했다.

김현규씨는 언제나 깔끔하다. 잘 빗어 넘긴 머리카락, 단정한 옷차림뿐만 아니라 생활방식과 일상예의 역시 '단정' 그 자체다. 그는 연극하는 사람, 예술하는 사람은 상큼하고 예의 발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찢어진 허름한 청바지, 아무렇게 날리는 머리카락, 일탈로 비치는 행동은 예술이 아니라 예술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단정함'은 그가 지치지 않고 무대에 오르는 자산이기도 하다.

"배우는 튀면 안 됩니다. 배우는 2등이어야 해요. 2등 배우들이 모여 1등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1등이 많으면 작품이 2등으로 밀려납니다."

그는 애드립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번 애드립을 써서 관객반응이 좋으면 또 다른 애드립을 쓰고, 그런 식이 이어지면 작품이 망가진다고 했다.

"정중한 마음으로 대본을 받고, 두려운 마음으로 무대에 서야 합니다. 애드립이나 기교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품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몰입할 때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김현규씨는 "만화방 미숙이 인기가 높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고치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충고도 나온다. 조심해야 한다. 옆에서 입을 댄다고 작품의 특징을 깎고 닦아 원래 맛을 잃어서는 안 된다. 관객이 좋아하는 이유는 작품의 질그릇 맛"이라고 했다.

그는 연극인생 40년 동안 대본을 받으면 언제나 두꺼운 겉표지를 붙이고 조심스럽게 읽었다고 했다. 대본을 둘둘 말아 호주머니에 쑤셔 넣는 태도는 큰일날 태도라고 했다.

평생 배우 김현규씨는 "연극은 나 아닌 삶을 통해 나를 완성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내게는 수백번째 작품일지 모르나 관객에게는 첫번째 작품이다. 배우에게는 한번 실수나 태만이지만 관객에게는 전부다.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작품을 작품답게 완성한다"고 강조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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